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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카잔에도 있더라

카잔칸국

by 이준영

바쉬키르와 저는 기도를 마치고 쿨 샤리프 모스크에서 나왔습니다. 'ㄷ'자 모양의 녹색 지붕 건물이 두 팔을 벌려 모스크를 와락 껴안으려 하네요. 이 건물은 타타르스탄공화국 대통령궁입니다. 러시아제국 시절인 19세기 중반에 지어졌는데 카잔을 다스리던 총독부 청사로 쓰였다고 합니다. 쿨 샤리프 모스크가 타타르스탄의 무슬림 정체성을 보여주듯 대통령궁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타타르스탄이 무슬림 국가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공화국'이라고 하니까 타타르스탄이 마치 주권 국가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타타르스탄은 러시아연방공화국 안에서 제한된 자치권만을 인정받는 연방 주체입니다. 쉽게 말해서 캐나다의 퀘벡(Quebec)이 국제법상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state)가 아니듯이 타타르스탄도 국가가 아닙니다. 러시아에는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붙는 연방 주체(federal constituent entities)들이 타타르스탄을 포함하여 22곳이나 있습니다.




쿨 샤리프 모스크는 '카잔 크렘린'이라는 역사 유적 공간 안에 조성되었습니다. '크레믈린'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자리한 명소를 우리말로 크레믈린이라고 적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제가 군 생활할 때, 육군 제3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받았던 수양록에는 훈련병들이 멸공(滅共)의 씩씩한 기상을 떨치라며 '크레믈린까지 진격하자'라는 반공 시구가 수록되었습니다. 크레믈린이라는 말은 KGB(소련의 정보기관) 요원처럼 음흉해 보이고, 지하 고문실에서 나는 쾨쾨한 냄새가 풍기질 않나요? 요즘은 언론에서도 그렇게 안 부르고 크렘린이라고 쓰더라고요.



그런데 크렘린이 모스크바에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앞글자 소문자를 써서 '크레믈(кремль)'이라고 적힙니다. 소문자를 쓰니까, 크렘린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겠지요. 우리나라에 수원성, 진주성, 동래성이 있는 것처럼, 크렘린도 러시아의 오래된 도시에서 흔하게 보이는 방어시설입니다. 그냥 '도시 안에 있는 요새'를 뜻하는 말입니다. 16세기 후반부터 모스크바공국의 모험상인들이 화승총으로 무장한 코사크 부대를 이끌고 시베리아의 이르티쉬(Irtysh)와 오브(Ob)강같이 큰 물줄기를 따라 배를 타고 정착지를 개척했는데, 유목민들의 화살 세례를 피하여 강변에 서둘러 크렘린을 지었습니다. 그런 곳들이 튜멘(Tiumen)에도 남아있습니다.



카잔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카잔스키 크레믈(Казанский кремль)'이라고 하고,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은 '마스꼽스키 크레믈(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모스크바 크렘린은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최고 권력의 상징이니만큼 백악관, 청와대처럼 그냥 '끄레믈' 자체가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하지요. 카잔 크렘린은 벨리키 노보고로드(Veliky Novogorod)의 크렘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카잔 크렘린은 볼가강 유역에 살았던 튀르크계 민족인 불가르(Bulgars)인들이 11세기 무렵부터 만들기 시작한 요새입니다. 그리고 12세기에 오늘날처럼 하얀 돌벽으로 둘러쳤다고 합니다.




몽골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의 몽골 군대가 말달려 유라시아 대초원을 지배하면서, 이 드넓은 땅은 몽골 제국의 서쪽 영역이 되어 조치 울루스(Juchi Ulus)가 됩니다. 칭기즈 칸의 네 아들 중 장남인 조치가 1223년에 볼가강 유역에서 불가르인을 상대로 한 전투에 참여했고, 이 지역을 분봉(分封)받았지요. 울루스는 몽골 말로 '나라'라는 뜻입니다.


조치는 아버지인 칭기즈 칸보다 일찍 죽는데, 그의 장남 오르다(Orda)가 백장칸국(White Horde)을, 차남 바투(Batu)가 금장칸국(Golden Horde)을 수립합니다. 칭기즈 칸의 피를 물려받은 바투는 1240년에 동슬라브인들의 심장인 키예프(Kiev)까지 불태워 저항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습니다. 이 무렵 대륙 반대편 한반도에서 고려 왕이 강화도로 피신하여 대몽(大夢) 항쟁을 벌였지만,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백성들은 성난 몽골군의 밥이 되었지요. 모스크바는 물론이요, 거의 모든 동슬라브인의 도시가 금장칸국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몽골 통치자의 천막이 있는 사라이(Saray)로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쳐야 화를 면하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됩니다.


금장칸국의 강역과 사라이(Saray)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볼가강이 흐르고 무역 요충지에 자리 잡은 카잔은 금장칸국이 와해하고 나서도 발전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타타르인들이 이곳에 세운 나라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됩니다. 922년에 불가르 왕자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초원에 이슬람 문화의 싹을 틔우는데, 몽골 군대를 따라온 타타르인들도 나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지요.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저술한 프랑스인 역사학자 르네 그루쎄(René Grousset)는 중국을 정복한 쿠빌라이의 후손들이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한화(漢和)되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훌레구의 후손들이 페르시아의 술탄이 된 것과는 달리, 금장칸국의 칸들이 현지의 슬라브 문화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질적인 주변부 문화인 이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초원이 서구 세계와 문화적 단절을 겪게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카잔이 19세기에 러시아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무슬림들의 사회문화적 중심축으로 부상함을 고려한다면 르네 그루쎄의 이러한 주장은 서구 중심주의에 치우친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타타르인들이 초원에 세운 나라는 크게 네 곳(크림, 아스트라한, 카잔, 시베리아)으로 나뉘는데, 금장칸국의 왕자였던 울룩 메흐메트(Ulug Mehmet)가 1438년에 카잔을 수도로 하는 카잔칸국(Kazan Khanate) 수립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제 팔뚝에 유성펜으로 진한 흔적을 남기고 떠난 타타르 아가씨, 아이발라(Aybala)도 튀르크 핏줄을 타고난 여자입니다. 그녀의 이름자에서 '아이(ay)'가 튀르크어로 '달(月)'이라는 뜻입니다. 터키어로도 달을 'ay'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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