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라이프(STILL LIFE)

일상의 예술


생각이 깊어지는 밤, 키보드 소리, 내가 팔뚝을 긁는 소리, 창 너머 겨울을 맞은 보일러 소리가 들린다. 영화의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서야 그 소리가 다시 살아난다. 영화 장면에만 집중하다가 듀얼 모니터의 노트북 화면을 다시 보게 된다. 영화에서 천천히 빠져나온다. 화면은 흩어지고 생각은 고요하다. 마흔의 살결이 쭈뼛 서고 키보드가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때, 무엇인가 남기는 것이 여전히 정물화(still life)처럼 고단한 일이 된다.


영화 [스틸 라이프]는 사진에서 시작한다. 사진은 정물화(still life)를 대신해 왔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그림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임금을 그리지 못하게 하거나, 그림을 사람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림이 흔해지다가 부르주아지들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의 대상이 사람을 너머 사물로 흘러들어 갔을 때, 그림은 아우라가 사라지게 된다. 사물과 사람, 질감과 온기와 부패가 일어나는 것들이 어느 순간 스틸컷처럼 정지한다.


[스틸 라이프]의 사진 속 사람들은 대부분 사물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을 사진 속 인물은, 그 관계가 깨어졌을 때 이제 사용기한이 만료된 여권처럼, 빛바랜 복권처럼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런 사진을 '자신의 일로서' 보듬은 사람이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 존 메이(에디 마산)다. 그는 공무원으로 무연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그는 망자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와 연관된 사람들을 찾는다. 그는 전화통화 너머 망자의 혈육과 통화에 나서지만 매몰찬 답변만 듣는다. 그러면 그는 유품에서 스토리를 찾아 망자의 애도 문구를 만들고, 장례절차를 밟는다. 그는 망자에 어울리는 장송곡을 고르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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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도 위기를 맞는다. 공무원인 그가 부처 통합으로 해고를 당하게 된 것, 공무원이 해고를 당하는 것이 영화의 주무대 영국 런던에서는 간혹 있는 일인 것 같다. 추천서를 써준다는 부서장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별다른 변명도 하지 않고 그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망자를 보내주는 일까지는 마치겠다고 한다. 부서장은 통합된 부서의 다른 담당자가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는 마지막 일은 마치겠다고 한다.


마지막 대상자는 빌리 스토크이다. 폭행 시비 등으로 단기 옥살이를 하던 그는 사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빈 술병이 그득한 좁은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주인공 존은 원래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그의 일에 매달리며 언제나 홀로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빌리 스토크의 유품에서 사진첩도 발견하고, 인화하지 않은 사진 필름도 발견한다. 빌리 스토크는 성미가 급하고 괴팍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추억하는 이도 있었고, 빌리는 알지 못하는 딸도 있었다. 그들은 한사코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잦은 옥살이를 했다는 단서만 찾아서 20년 전 교도소 기록을 찾다가 그에게 왔던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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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고지식한 존이지만 그는 편지 한 통을 몰래 반출하고, 주소를 찾아가 보니 그 사람이 빌리의 앨범 속 주인공인 딸 켈리인 것을 알게 된다. 켈리는 18세에 마지막으로 빌리를 만나고 본 적이 없었으나, 소식이 가끔 궁금했다며,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제는 아버지마저 없으니 고아가 되었다며 힘들어하지만 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존은 장례식에 올 것을 부탁하지만 켈리는 복잡한 마음인지 결정을 하지 못한다. 켈리를 통해 빌리가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참전자였음을 알게 된다. 영국은 3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 승전으로 기록되었고, 철의 여인 대처는 강경한 대처로 재신임을 받으며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영국에 뿌리 깊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포클랜드 침공이라는 국가적 사건은 한 인간 빌리에게서 지울 수 없는 장면을 제시했고,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추억하는 이는 그 사건 이후에 술을 심하게 마셨다고 넋두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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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부서장에게 며칠 말미를 더 달라면서 포클랜드 전쟁 참전 전우에게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부촌에서만 구걸을 했는데, 그곳에서 여전히 구걸 중인 노숙자들에게 술을 대접하며 빌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빌리를 추억하면서 존에게도 병 채 먹는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빌리의 장례식 날짜가 다가오고 그는 자신의 일처럼 장례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망자의 유언도 없으니 유품과 주변인과의 대화 속에서 빌리에게 맞는 관 색깔과 묘 자리를 정하고, 노래를 심도 있게 고른다. 빌리의 장례식을 준비를 다 마치고 존은 부서장의 차에다가 오줌을 누며 전에 없는 일탈을 보인다.


빌리의 딸이 장례식에 참여하겠다는 연락을 한다. 켈리는 자기의 일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챙기는 존에게 관심이 있음을 표시한다. 존은 장례식 후에 켈리와 차 한잔을 마시기로 한다. 존은 동네 상점을 들려서 작은 CD플레이어를 사고 컵을 두 개 구매한다. 그렇게 웃으며 맞은편에 도착한 버스를 타러 건너가던 중, 차사고를 당하고 그는 웃는 얼굴로 죽는다.


영화는 존이 직업을 잃게 된 사회적 죽음과 빌리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서 결국에 무연고 시신이 되는 일에는 국가의 영향이 있었음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깨어진 삶의 관계들 속에서 무엇이 진짜 관계이었는지를 물어본다. 인류 문명은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생동하던 존재가 정물화처럼 굳었을 때, 망자와 관계를 맺던 이들은 삶을 성찰하며 더 나은 삶은 무엇이고 이번 생 이후의 생을 상상하며 무엇이 괜찮은 삶인가를 묻는다. 단순히 '사진'하나로 무연고 '시신'하나로 치부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스틸컷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일은 의미 없는 삶에서 그나마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빌리의 장례식에는 존의 발길이 닿았던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 그들은 망자를 둘러싸고 포클랜드 전쟁의 자줏빛 베레모를 쓰거나 고아가 된 켈리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빌리가 알지 못하는 딸과 조우한다. 노숙자들은 그들에게 귀한 술을 묘지에 뿌리며 애도한다. 켈리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존을 찾지만 그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그들의 설레었던 마음은 또 다른 정물화처럼 남아있으며 존은 애도하는 누구도 없이 홀로 묻힌다. 삶의 두께는 정물화와 같은 순간이 켜켜이 쌓인다. 고단한 삶은 다시금 영화 바깥으로 퍼진다.


축약된 대사, 눈물 하나 없이 절제된 감정, 고요하다가 고조되는 음악, 여운이 있는 장면들, 묵직한 비판의식, 근본적으로 죽음 앞에 여전한 삶을 보여주는 주제의식이 상당히 빼어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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