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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기억이 나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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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3화에서 여전히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다. 그 대사가 나온 장면을 생각하다 보니, 3인용 밥상에 앉은 그들의 모습에서 [파친코] 주인공이 겪게 되는 권력과 가치의 변동을 짐작해볼 만하다. 그들이 클로즈업되는 장면과 대사를 통해 [파친코]의 주제의식을 가늠해본다.


먼저 장면 #1


- 도쿄 할머니 (이분 존함을 찾기 어려운데 연기가 너무 좋으시다) :

  어머나, 커피 냄새 처음 맡은 날이랑 똑같으시네

  세상에 뭐 그렇게 좋은 냄새가 다 있었더니

  몇 년 지나 마셔봤더니

- 선자(윤여정):

   억수로 쓰다 아입니까요.

- 도쿄 할머니 :

   상상이랑 영 딴판이더라고요


 어느새 나는 처음 마셨던 커피의 감각을 잊어버렸다. "쓰다"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금 "쓰다"를 생각하게 만든 이 문장은 커피의 향, 곧 서구나 근대화의 결과물을 바깥에서만 냄새로만 알 때와 직접 경험했을 때의 차이를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에 앞에는 이 대사가 등장한다.


#장면 2



 - 도쿄: (밥 먹는 순자를 보고) 맛을 아시나 보네

 - 순자: 이걸 어째..

 - 솔로몬(손자) : 할머니 왜요?

 - 순자: 니 밥 지대로 함 무그바라

 - 도쿄: 이거 보라니까, 젊은 애들 맛의 차이를 몰라.

 - 순자: 이거 우리나라에서 키운 쌀이다.

 - 솔로몬: 어떻게 알아요

     ....

 - 순자: 그 시절에는 하얀 살밥 구경도 몬한다.

 - 도쿄: 그놈들이 키우나 우리가 키웠지, 죄다 뺐겼다니까요.


 윤여정 눈의 초롱초롱함이 인상적이다. 커피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솔로몬 백은 주인공 순자(윤여정)의 손자이며, 미국에 14살에 건너가 외국계 투자은행에 다니고 있다. 우리말, 일본어, 영어가 섞여있는 그는 자이니치인 도쿄 할머니에게 몇 번을 찾아간다. 할머니는 도쿄 재개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땅에 거주하며 소위 알박기를 하고 있었고, 누구도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에 같은 역사를 살아낸 자신의 할머니 순자를 데려가서 땅을 팔아달라고 애원하려고 했다.


  도쿄 할머니는 순자까지 모시고 온 솔로몬을 문전박대할 수 없어서 식사를 대접하고 식탁에 3명은 앉는다. 그녀는 밥 한 그릇을 퍼주고, 노년의 두 여성은 그 맛을 안다. 훨씬 더 "꼬숩고", "이 맛을 아는 사람이 몇 달에 한 번씩 고향(한국)에 가서 사 오는" 귀한 쌀을 먹고 눈물이 글썽이며 옛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 밥을 먹으며 순자는 드라마에서 세상을 달리 한 '형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이 모습이 낯선 솔로몬은 "왜 그러냐"고하지만 도쿄 할머니는 "부끄러워 말아라,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야"라고 한다.  


  '밥' 냄새와 '꼬숩다'는 느낌은 커피와 다른 서사를 제공한다. 같은 감각의 향과 냄새라고 이것이 나의 소속감과 존재론적 뿌리와 연결된다면 그것은 '커피 - 향 - 쓰다'로 연결되지 않고, '밥 - 냄새 - 꼬숩다'로 연결된다. 나에게는 익숙하고 무미건조한 커피의 향이 낯설었던 그들에게는 일반적인 감각으로 전달되지만, 고향 땅에서 난 쌀밥에 대해 솔로몬은 감각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꼬숩다는 향내로 연결된다. 물론 이러한 그리운 밥 향기는 굴절된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와 그 토로로 곧장 연결된다. 밥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 견뎌온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의 종류는 퍼지고 짙어진다. 밥의 수탈과 식민지적 착취의 드러냄은 다음 장면으로 연결된다.


# 장면. 3


도쿄 할머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땅이 궁금하지 않겠지만,

  인정머리 없는 놈,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몰라

솔로몬:

  할머니한테 속이려는 것도 아니고 뺏으려는 것도 아니고 비싼 값에 사려는 거잖아요.

   ... 고맙다는 말씀도 없고, 나쁜 일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이제는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갚을 때에요.


 밥을 먹고 도쿄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다가 재떨이에 버린다. 어느새 밥 한 끼와 옛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도쿄 할머니는 얼굴이 확 달라져 있다. 물론 그것이 밝고 활기찬 얼굴이기보다는 체념 혹은 후대에 대한 아쉬움, 그러면서도 너그럽게 인정하고 싶은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는 듯하다. 할머니는 솔로몬에게 묻는다. 그가 왜 땅을 지키려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땅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자본의 '보상금'으로만 채근하려 드는 것이 '인정머리 없음'으로 다가온다.

 

 솔로몬은 솔직히 말한다. 원래 값보다 몇 배는 더 쳐줄 것이고 1950년에 4천엔 정도로 샀던 땅을 지금 10억 엔을 주고 사려는데, 그것 가지고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자식들에게 물려주시면 될 것을 왜 그게 인정머리 없고 부끄럽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적이게 그는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갚을 때'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서구의 자본이며, 자본 가치의 상승을 몫을 수탈이 아닌 정당한 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복잡한 영역이다. 때론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주장도 있으나 '정당한 보상'이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가해한 이들에게 진정함을 기대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의미가 있을까? 진정성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현시대의 교환가치가 가장 높은 자본으로 보상하는 것이 진정성은 없으나 합리적이며 정당할 수 있다. 시대적 고찰을 통해서 자본을 배타적으로 생각하거나 맹종하지 않으면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사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이런 대서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기대된다.


원작은 드라마가 끝나고 읽어보고 싶다.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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