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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4화] 땅 밥 비


 파친코 4화는 3화에서 선자(윤여정)의 말을 잇는데서 시작한다. 

 

 선자: 흰쌀밥 보니까, 시집간 날 생각나네요. 


 선자는 도쿄에 사는 같은 연배의 자이니치가 내민 고향 땅에서 온 흰쌀밥을 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랫동안 살아온 일본 땅의 쌀보다 훨씬 '꼬숩다'는 고향 쌀밥의 향기는 같은 냄새의 옛 기억을 불러온다. 4화는 그 옛 기억을 구체적이며 숭고하게 그려낸다.  


 굳이 '숭고'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시리즈물 파친코는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더 어울릴 정도로 영상, 음향을 비롯한 장면 자체의 품격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적으로 숭고해 보이는 인간의 삶과 죽음, 큰 역사적 사건 속 희로애락을 특별히 담아낸 것이 아니라, 엄마가 지어준 밥 한 끼, 선자의 시선에서 본 낡아빠진 무거운 솜이불, 볏짚으로 엮어낸 오래된 쌀 조리개와 같이 평범을 숭고함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오직 '시선'이다. 이 작품에서 수없이 삼켜왔을 쌀 밥을 국적을 달리해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고, 시간을 거슬러가며 각별함을 드러내는 것은 상당히 새롭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쌀을 씻고 쌀뜨물을 받아내고 솥에 쌀을 담고, 뜸 들인 뒤 솥을 여는 순간 안개 같은 '김'마저 인상적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우리 쌀은 모두 일본인들에게만 팔도록 했음에도 난처함을 무릅쓰고 쌀집 주인은 선자의 엄마에게 3홉의 우리 쌀을 건넨다. 3홉은 선자, 새신랑 이삭, 그리고 어머니 셋이 먹으라는 주인장의 의지였지만, 엄마는 그럴 일이 없다. 호롱불 아래 2홉을 사위, 1홉을 딸에게 담아 밥상을 차려주고 자리를 비켜준다. 


  

 어느덧 쌀밥을 대접했던 도쿄 할머니의 부동산 매각 관련 보상 대상자 서명식으로 장면은 전환된다. 이 장면은 숭고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고 권위적이다. 보상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부동산 개발을 진행하고자 오직 그들의 '서명'만을 목적으로 하지만, 서명 전에는 억지웃음과 친절한 일본말을 동원한다. 서명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는데 보상을 받으려는 사람은 '서명'만 하면 될 것을 꼼꼼히 따지고 있느냐 되묻는다. 도쿄 할머니는 광산개발 징용에 갔었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시절, 일본의 업자와 관리들은 말로는 돈을 벌고 가족들을 모두 일본으로 이주시켜주겠다며 그녀의 아버지를 속였다. 그러자 일본인이 정중한 말로 '다 지난 일이잖아요'라며 할머니의 어깨를 잡는다.  


  자이니치 가족 눈물이 담긴 땅을 이제는 자식들을 위해 높은 가격에 보상받는 것이 기쁜 것 아니냐며 모두가 '원만히' 끝날 것을 이런저런 표현을 써서 드러낸다. 도쿄 할머니를 설득했던 솔로몬 백은 4화의 말미에 양복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빗 속을 달려서 록 밴드 앞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춘다. 자이니치이면서 미국 대학을 나온 그는 그가 가장 의지하는 할머니 선자의 손에 자랐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한 것인가, 오직 그는 넥타이를 풀고 양복을 입은 이들이 통상 생각할 수 없는 '미친 척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선자는 그 시간 빗속을 뚫고 나고 자란 고향땅 영도에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해안가를 지나가려는데 선자는 갑자기 내린다. 온갖 물들이 뒤섞인 곳, 파도가 부서져 땅과 비에 섞이고 선자는 언젠가는 그녀가 기대고 그녀를 먹였던 땅에 서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빗 속에서 땅은 파이고 얼굴은 부딪힌다. 선자가 바닷가를 바라본다. 수 십 년 전 출항하는 배가 수평선을 지나 사라질 때까지 배를 응시하던 엄마처럼. 고향 땅은 또 얼마나 그녀를 낯설게 하며 보듬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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