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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2] 아바타 시리즈 속 아바타1같은 디딤돌


아바타1이 개봉했던 2009년 이후 나는 가끔씩 아바타2의 개봉이 언제인가를 검색해보는, 아바타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하는 애청자이다. 이제 태어난 아바타2는 결론적으로 아바타를 기다려오고 아바타1의 줄거리를 머릿속에 꿰고 있는 사람들은 실망하고, 아바타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신기함과 웅장함으로 만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임스 카메론의 시리즈물을 모두 섭렵하지는 못했으나, 이번 아바타2는 어떠한 거대한 서사시를 이룩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지나지 않고, 아바타 1의 맥락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영웅서사'가 아주 오래된 스토리 전개 방식이다. 영웅의 탄생 - 위기 - 극복 - 승리와 해소의 방식 곧, 영웅의 기승전결을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2009년에 처음 아바타를 만났을 때의 엄청난 놀라움에 비견했을 때, 그 놀라움이 익숙함으로 변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양한 비-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져온 줄거리와 감각의 엄청난 발달을 아바타2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압도할만한 웅장한 영상이 필요할 텐데 그마저도 익숙하고, 그 장면을 해양이라는 공간으로 옮겼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3D 영상으로 봤기 때문에 기술이 가져오는 불편함과 정보 이해의 부족함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IMAX 등에서 2D로도 다시금 봐야겠다. 3D 안경을 통해 펼쳐지는 완벽하지 않은 3D 영상과 그 협소함 속에 줄어드는 그래픽 효과는 압도할 웅장함을 충분히 감소시켰다.


기존 가부장제 기반 가족주의, 영웅의 영웅주의 서사에서 벗어나 요즘에 더욱 등장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 가족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의 형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빠는 가족을 지킨다' '술리가족은 하나다' 등의 언사는 익숙하고 때론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으나, 변함이 없다. 아바타1이 근본적으로 내재한 이제는 사라진 원시 시대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불러일으키는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은 의미가 있으나, 반복적으로 보인다.


 아바타 1에서 주인공 제이크 술리가 몸이 불편한 인간에서 나비족에 되어가는 과정과 아바타2에서 사고뭉치 아들 로아크가 숲과 바다를 연결하는 나비족 일원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너무 유사하다. 거기에 적으로 등장하는 군대 대령은 정신을 복사해서 아바타 몸체에 이식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피아 이분법이 반복된다. 여전히 그들은 전장만 달리했을 뿐 유사하다.


그들이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것은 아바타 1에서 아버지의 상실, 그리고 아바타2에서 누군가의 상실과도 비견된다. 위기에서 결국에 자연이면서 나비족과 연관된 동물이 제시되는데, 아바타1에서 하늘의 새 - 토르쿠막토 -와 아바타2에서 바다의 거대한 생명체와 동일하다. 그리고 아바타2에서 끝내 밝히지 않는, '아이와'라는 거대한 신적 존재가 한 명의 주인공으로 향하며, 이것이 이후에 '아버지를 모르는' 인물의 비범성이 어떤 신화에서나 등장하는 '동정녀의 잉태'와 다르지 않다. 인류학자였던 시고니 위버가 아이와에게 치료를 받다가 결국에 깨어나지 못하는데 아이를 낳게 되고, 그 아이는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아이와와 생물학적 여성인 인류학자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  

 아바타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던 애청자로서 익숙한 서사 그리고 3D에 대한 아쉬움이 겹친 비판적 영화 후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바타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거나 본 적이 없는 분들께는 여전히 강력히 추천할만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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