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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사과의 잠] - 명랑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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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봄/김정수


지상에 봄의 발이 닿기 전에

꽃잎을 풀어놓아야지

맹수처럼 바람을 유인해 우수에 닿아야지

연두는 사람이 인용할 수 없는 용서

내가 풀과 나무와 시퍼런 멍을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당신은 조금 어두워지는 아침을 가졌군요

초록은 울창한 허공에서 죽지 않아요

죄 없는 것들의, 어린 방문을 열고

다정은 위태롭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요

슬픔은 새가 날아다니는 창밖만

어루만져요 서서히 꽃잎 내려앉은 발자국마다

어둠이 고여 있네요 헐거운 상처 속에 잠든 

갈기를 깨우면 날카로운 이빨을 꺼내놓아요

당신,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요

명랑한 무덤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두물머리 한 켠에 놓인 카페에 앉아 시야를 둘러싼 강안개를 본다. 물 알갱이는 무엇을 감추고 있었을까. 온갖 물줄기들을 견딘 퍼런 글자가 시집에 들어있다. 장마철, 그토록 짧아진 봄을 '명랑'하게 느끼기도 그친 계절이 되었다. 


여름철도 아닌 장마철, 빗줄기와 30도 온도는 4월의 연둣빛 이파리들에 금세 채도를 더해 초록을 만들었다. 무섭게 무성해지는 반복된 계절의 상처, 그것을 신뢰하는 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빗줄기를 그치게 하는 잠시의 육교나 다리 밑처럼 봄은 찰나와 같이 사라진다. 


시인의 봄은 여느 봄과 다르다. 명랑의 해학과 고통 속의 씨익거림은 위태로운 다정이며, 죄 없고 어린것들을 퍼렇게 만드는 어둠이며 반복되어 헐거워진 상처이다. 그 이빨이 되어버린 초록의 거인,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 연두와 초록의 흐름도 그저 받아들인 이가 되었어도, 해마다 돌아오는 잠깐의 봄과 거스를 수 없는 연두는 움직임 없는 아픔이며, 다래끼 같은 봉분이다. 


축축한 장마철 속에서 다시금 자라날 상처와 그 흔적의 이파리들, 그것을 지나다니는 알록달록의 사람, 걸음걸이에 명랑함은 무엇을 견디고 슬쩍 드러나는 갈퀴였던가. 나를 긁어내지 않고 시인이 긁어준 글에 서서히 머물게 된다. 잠시 명랑한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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