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김미옥 탄수화물적 사랑

탄수화물적 사랑 / 김미옥

사람에게 필요한 3대 영양소는 단탄지

시험에 잘 나오니까 꼭 암기하도록

풍만한 가정 샘은 침 튀기며 말했지

단백질.탄수화물.지방

입에 착착 감기는 단탄지

사랑할 땐 세상은 적과 동지로 갈린다

먹이려는 자와 밥을 피해 달아나려는 자

나는 투사가 되어 조용히 밥을 날랐지

홍탁을 좋아하면 홍탁과

순댓국을 좋아하면 순댓국과

약한 비위가 견딜 수 있었던 건

그의 모든 냄새와 연대를 맺었기 때문

따뜻하게 올라와 나른하게 퍼지는 단탄지

몸 안 작은 발전소에선 매일 엔진을 돌았지

연대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단단했던 믿음이 사라지던 날

슬픔보다 먼저 오는 허기

식은 밥 물 말아먹을 때 

눈꺼풀이 떨리는 건 눈물 때문만은 아니었지

예의 없는 날들을 폭주족처럼 지나가고

같이 밥 먹던 사람은 금방 잊히기도 하지

어제는 타인이었는데 오늘은 불쑥

임연수 가시를 발라주는 당신

훅훅 올라오는 밥 냄새 빠르게 도는 침샘

연대의 시작이라 말해도 될까

중독성 강한 단탄지의 힘 다시 믿어도 될까

'슬픔보다 먼저 오는 허기', '훅훅 올라오는 밥 냄새 빠르게 도는 침샘'에서 이미 나는 무너져 버렸다. 인문학의 생명인 정직과 사랑의 큰 울림에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삶의 정수이다. 사랑에 힘을 내 온갖 역한 냄새를 연대로 참다가도 사랑으로 힘이 빠져서라도 숟가락을 들어야 하는 몸에 틀어 박힌 인간은 관계와 존재의 진자를 유동하고 있다. 

 때론 사랑보다 배고픔이 먼저였지만, 그 사랑은 단 한 번도 무게를 달아 순위를 매겨본 적이 없이 연대에 충실했던 때가 있었다. 그가 생각나고 그녀도 생각나지만 그 생각의 경중을 따지며 값을 매기기보다 모르는 것 앞에 고개를 숙이며 또 다른 단탄지의 연대를 찾아내는 느슨한 시인의 마음. 

 누군가는 정신승리를 강조하며 무엇을 이루어야지, 영웅이 되어야 한다며 존재를 극대화하려고도 한다. 그 끝에 하이데거가 있었고 그 반성에 레비나스가 있다. 하이데거가 존재를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그려냈다면 레비나스는 존재보다 앞선 존재자, 바로 눈앞에 인간에 집중했다. 정신 승리하지 말고, 다시금 유물론적으로 먹을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투사처럼 전쟁을 치렀다고 말하지만, 철학의 전쟁과 결이 다르다. 사람들을 복속시키고 이 존재가 맞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 옆 사람의 몸 앞에서 따뜻하게 올라와 나른하게 퍼지는 밥을 무던히도 날랐다. 밥의 숭고함과 투쟁 앞에서 덤도 아니고 덜도 아닌 사랑은 그렇게 흩어지는 듯하다가 임연수 가시를 들춰내며 등장한다. 

 오늘도 그 시를 받아먹고 내 뇌 속에서 그 시구가 여전히 중독성 있게 맴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