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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_김정수[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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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청 / 김정수


목발에 몸 기댄 늦봄

차가운 방이 방을 탈출한다.


차도보다 높은 언덕에 뒤돌아 앉은 의자 다리 부러져 모로

누운 의자 의자에 의지한 의자가 늙은 아이처럼 멈춰있다.


세간을 실은 트럭이 힘겹게 고갤 넘자

비좁은 비탈이 심하게 다리를 전다.


오래된 말소리가 등 뒤에서 굴러떨어진다.


종종 잦아드는 바람은 길의 환승

안이 더 따뜻하다는 오랜 편견에

살아있는 무덤처럼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함께 걸었던 천변 왕벚나무에서 방들이 휘날린다.

잠깐의 휴식도 쓸쓸한 허락이 되는


얇고도 가벼운 겹겹의 방들이

시냇물 위에

환청처럼 떠있다.


김정수 [홀연,선잠] 중



 하루도 늙지 않는 삶이 없듯이 한 번도 지지 않는 꽃은 없었다. 그러나 씨앗이 풀이되기 위해 풀이 나무가 되기 위해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듯 왕벚나무에 기대어 핀 꽃은 나중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중을 생각한다. 내 삶은 어떻게 꾸려 가야 할까,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 누군가는 '아서라 그런 고민 말아라, 카르페디엠이다'라고 한다. 시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목발처럼 기댄 꽃, 벤치에 떨어진 꽃잎, 이내 시냇물에 둥둥 떠다니는 꽃으로 그저 보여준다.


 늦봄은 아련하면서도 찬란하다. 쪽방에 사는 몸이 불편한 인간에게는 이 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바깥보다 차가운 방을 떠나 힘겹게 일으킨 걸음걸이는 잠시 왕벚나무 가로수 옆에서 머물며 힘도 비축해야 하고 세간 살이 채운 트럭조차 오르막을 애써 걸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위로해야 한다. 그 누군가의 지겨운 목소리도 들릴 수 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인간의 미래와 고됨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인간은 수군 거리기도 한다. 이미 차가운 관계만 남은 삶에서 오로지 나를 위로해주는 벚나무 꽃잎, 그의 추위를 위로하기 위해 나뭇잎보다 꽃잎이 먼저 피어오르는지 모른다.


 그런 차가운 관계와 가벼운 삶이 늦봄 시냇물에 꽃잎이 되었다. 꽃잎은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 어쩌면 죽음을 맞이한 꽃잎은 마지막으로 시에서 누구에게도 버림받은 누구에게 마지막 볕을 주고 위로의 속살거림을 건넨다. 때론 내 귀에 들리는 환청, 햇살이 너무 밝아 누군가를 사라지게 했다는 까뮈의 진술처럼 막연히 따뜻해지는 늦봄의 어느 날 현기증 나는 햇살, 그 찡한 환청이 가벼운 내 삶에서 촉촉하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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