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 나브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나브로_ 방수진[ㄱ의 감정]

CoveringthePoem


ㄱ의 감정 / 방수진


곡선의 아름다움은 직선의 외도에 있다. 걸어온 것들을 그 자리에서 추락시키고 뼈를 꺾고 살을 베어 처음과 끝 그 태생적 외로움을 안으로 안으로만 품어주는 일. 직선이 제 팔을 꺾어 곡선이 될 때 수만 개의 관절이 부서지고 뒤틀린다. 차마 둥글어지지 못한 것들은 각이란 허공을 가지지. 어둠을 낳고 어둠으로 깊어진다. 품을 수 없는 것들은 가두어 내려앉아 버리고 밑으로만 밑으로만 아득해지지. 하이힐이 섹시한 이유는 곧고 날렵 해지는 다리 곡선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무게를 버티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삼각의 감정 때문이다. 발뒤꿈치의 동동거림, 그 허공의 눈빛 때문이다. 그래서 견디는 것들은 모두 슬프지. 버티는 것들은 간절하다. 평생을 고개 숙여 허공을 받아내는 저 ㄱ처럼

 



 이 시는 모든 날카로운 것들을 향한 위로 없는 이야기이다. 곡선은 아름다웠던가, 혹은 곡선이 부드러워 보여도 직선의 가파름을 참아낸 바깥길(외도)였고, 직선이 평생 고개를 숙여 지켜온 외도의 결과이기도 했다. 곡선을 벼리고 벼려야 군더더기를 없애고 없애야 결국 직선이 드러나 보인다. 가장 완벽해 보이는 원도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일 뿐 부드러움은 아니다. 그것을 잘게 쪼개고 쪼개면 원주율이 나오고 그것은 직선들의 집합이다. 생일 촛불처럼 꼿꼿하게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직선은 제 몸을 꺾고 뒤틀려야 살아갈 수 있다. 생일 촛불이 늘어남은 낡은 직선의 폐허가 여기저기 흩어져 하나로 드러나기 때문일까, 그 많은 촛불이 때론 부끄러워 생일은 어느새 잊힌 삶의 조각이 된다. 


 둥글어지지 못한 것들이 각을 이룬다. 각은 뾰족해 보이지만 견딤과 드러냄의 가냘픔이다. 그것을 견디면 혹은 둥글게 되면 각은 사라지고 직선도 사라지며 그도 사라진다. 각 안쪽은 또 어떠한가, 방구석을 보듯 어둠과 어둠으로 가득하다. 풍파에 꺾인 뼈들의 부스러기가 모여있고, 발꿈치까지 내려온 눈초리, 눈이 바라보는 발의 밑은 품을 수 없는 어둠과 뭉클함이 있다. 


 부서질 것 같은 몸이 체념처럼 각을 만들고 있으며, 견디는 것을 바라볼 수 없는 우리 서로는 ㄱ을 눕히고 걷히고 삼켜야 겨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ㄱ끼리는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서로의 흐느낌과 꺾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간절하게 부들부들 거리며 버티는 삶의 다리, 그 높이만큼 불안한 하이힐의 걸음걸이, 그 버팀의 동동거림은 각진 삶의 유연하지 못함이었다.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세련됨으로 불릴 때, 까칠한 이들의 울음을 본다. 각을 세워서 고개를 들어야만 살 수 있었던 까치 주둥이 같은 까치발을 생각해 본다. 


 ㄱ의 끝, 낭떠러지까지 참았던 수정체의 버팀이 무너지는 순간 눈꺼풀을 지나 떨어져 부서지는 몸의 조각, 곧 눈물은 흐르지 않고 떨어진다. 이내 수평한 바닥에 엉켜 사라진다. 소리도 기댈 틈이 없는 순간의 감정



매거진의 이전글 시:나브로_ 장정욱[물속에 꽂아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