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산업인류학연구소 박준영 Jul 25. 2023
정준일/고백
...
별다를 거 없어 사는 게 그렇잖아
언제나처럼 우린
늘 혼자였잖아.
...
보컬레슨을 받으며, 목에 힘을 빼고 공간을 울리며, 소리를 지르지 않고 말하듯이 부르고, 끝음처리 등에 신경을 쓰는 등 빠르지 않지만 조금씩 변하는 게 참 즐겁다. 레슨을 처음 받을 때 했었던 정준일의 [안아줘]가 이제는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것 같았는데 이번에 레슨 선생님이 정준일의 [고백]을 추천했다.
20대에 알던 노래로 평생을 사는 경우가 많아, 나도 별로 다르지 않게 김동률, 이소라, 박효신 등의 가수 노래를 듣는다. 그 시절의 기억과 감상을 담기 때문이다. 정준일 [고백] 가사 또한 뜨거웠던 어떤 시절의 사랑과 이별이야기라서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꼭 그 시간이 지났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헤어짐의 순간에 '별다를 거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가진 담담함 속에 응어리, 별다를 것이 진짜 없다면 그 사람 앞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회한으로서 별다를 거 없다고 말한다면 또 다른 감정일 것이다.
특별히 '별다를 거 없어 사는 게 그렇잖아'라는 문장에 다시금 울컥했는데, 아주 드물게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레슨 받다가 울기도 했었다.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런 노래는 감정을 참기가 어렵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사는 게 그렇다는 말이 나에게 복받쳐 오른 이유는 사랑이라는 삶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전체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과연 삶을 별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음산한 용기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나는 지금 별다른 사람이 있어 사람사이의 구별이 된다는 의미나 삶의 경중을 따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삶의 다양한 가치관을 포기하고, 그저 일상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서 삶을 순위경쟁이나 시기와 질투, 부러워하고 멸시함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나도 그런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몸에서 튕겨나고 있는 결과로써 작은 카나리아 새의 목소리로서 눈물일 것이다.
권력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권력의 차별을 찬성하고 구별 짓기를 하려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별의 순간, 타인에 대한 성찰과 회환으로서 별다를 것 없는 삶은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를 성찰하지 않고 별다를 것 없으니 삶을 단조롭게 살 것이라는 것이다. 삶은 성취와 경쟁이며 이기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사 앞에서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