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 사는 유산소 Lover
나는 서대문구 홍제동에 산다. 서울에서 전세 사는 유산소 러버인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수영을 정말 못한다. 달리기를 한지는 꼬박 1년이 돼 간다. 2022년 11월 30일, 한 껏 턱선이 살아있는 선배를 만났다. 턱이 재수 없게 날카로워졌다. 참담한 시샘에도 나의 두툼한 뱃살에 술이 들어갔다. 그가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 알려주지도 않고 먼저 하시다니. 저녁자리의 목적은 모두 잊은 채 지구환경보다 나라는 인간이 재생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내가 외부 온도 영향을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땀을 흐르는 일을 언제 했었지. 그것도 먹고살기 위해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빼고, 내 삶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무엇을 해왔지. 약해지는 무릎, 관절을 제외하고 두툼해지는 신체 전 영역은 영토 싸움에도 지치지 않을 고집스러운 병사에 가까웠다. 거울을 보며 나의 식생활에 대한 찰나의 고민과 달라지지 않는 나를 채근하고 있을 때, 술 김에 형에게 추천받은 유튜브 채널의 댓글을 보면서 30일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무 날도 아니었다. 대부분 알게 된다. 특별한 날을 기다렸다가 시작하면, 특별하지 않게 대부분 망한다. 신년, 반년, 분기, 기념일 등등 산적한 특별한 날을 노리는 마케팅과 인간의 결심은 수요 공급 곡선처럼 그렇게 길항작용하다가 주춤주춤 하다가 매년 그 곡선을 반복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알고 있다. 아무 날이나 시작해야 한다. 술이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는 결심에 큰 도움을 줬다. 차차 밝히겠지만 그러면서 나는 10kg을 넘게 감량할 수 있었고, 허리 사이즈가 3인치가 줄었으며, 23년 5월에는 하프 마라톤도 2시간 언더로 겨우 턱걸이하며 성공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먹으려면, 뛰어야 한다.'
'오래 놀려면, 몸을 길러야 한다.'
조심스럽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여전히 모를 법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턱이 이제 나왔다. 옛날에 그 사람이 나왔구나, 옛날 얼굴이 나왔어도 여전히 겸손하구나 등등을 쏟아냈다. 동료들도 혹했다. 저 인간이 어떻게 살이 빠졌냐, 저 인간이 하면 나도 하겠다 등등의 의견들이었다. 회사생활 1년에 1인치씩 늘었던 허리를 겨우 유지했던 몇 년, 내가 그렇게 뚱뚱해졌는지 알지 못했다. 뚱뚱함이 현대사회의 나이 듦과 상품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화적 차별이라는 시선에 물론 동의하지만 내가 그럴 수는 없다. 하체가 두터워지다 보니 자랑하듯 짧은 반바지를 입기도 했다. 친구들이 노출증이 생겼냐며 조심스레 수건을 덮어줬다. 지겹도록 고마운 인연이다.
판판히 나를 믿었지만, 수많은 부침 속에 여름, 스트레스가 심했던 책 출간을 마치자마자, 아침에 여전히 달리는데 무릎이 턱 하고 아파왔다. 한 번은 그러려니 했지만, 두 번째부터 약간 억장이 무너졌다. '어 이게 아닌데, 왜 그럴까, 나 이제 다시 둥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인가? 더는 살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원 2주 정도 치료를 받았으나, 치료 효과가 애매했다. 그래서 1주일, 2주일 넘어가다 보니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딱딱했던 다리 근육이 조금씩 사라지고, 중력의 효과를 거스르듯, 근육이 허리선을 넘자마자 지방으로 변화하면서 허리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 무거움이 생각났다. 덜컥 겁이 났고, 숱한 시절 도전한 적이 없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영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는 핑계를 대며 '죽음이 나를 물에서 멀리했다'는 자기변명을 늘어놓고, 아이에게 수영만은 가르치리라, 어린 시절 내가 졸라도 됐을 일을, 수영 조기교육을 시켜주지 않았던 부모를 잠시 원망하기도 했다. 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다시금 허리사이즈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올 가을맞이해서 대담하게 3인치나 줄어든 바지를 사서 입고 너무 기뻤단 말이다. 게다가 조금만 지나면 숨이 차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새롭게 지어진 대단지에는 이제 수영장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 정도로 살지 못하는 옛날 아파트, 그것도 결혼생활 내내 특별 대상자에게 가능했던 저렴한 좁은 아파트에 살다가, 빌라를 살다가 처음으로 살게 된 아파트였다. 지하 주차장도 없는데 지하 수영장이라니, 아서라. 그래도 아파트 근처 초등학교 스포렉스에 등록했다. 수영복과 수영모를 떨리는 마음으로 사고 초급자 물안경을 샀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숨쉬기를 못하고 자유형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바쁘기도 했지만, 나가지 않는 수영 진도가 미워서 피로를 핑계로 6시 새벽반 수영 알람을 키우지 않았다. 이 정도로 필적한 수강 살인사건이 없다. 해야 한다. 한 번은 넘어가야 한다. 어떤 선배는 '6개월 동안 초급반이었다. 늦게 시작한 수영 남자 사람이 제일 못한다' 등등의 덕담을 해줬다. 덕담보다 물의 담은 높다.
특별한 날을 기다리면 대부분 망하듯, 꾸준히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다. 그것 말고는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어제 일요일 저녁 달리기도 다르지 않았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무릎이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속도를 높여서 자주 뛰던 8km를 도전했다. 기록도 다시금 단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2km가 지날 때쯤 무릎이 아파왔다. 겁이 났다. 자율 반환점을 만들어서, 집으로 향했다. 2km를 더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2km는 걸으면 25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부담이다. 아픈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걷다가 살살 뛰다를 반복해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라, 무릎이 괜찮다. 천천히 뛰며 다시금 집 앞에서 반환점을 돌았다. 홍제천 속에서 나는 나름 달아올랐다. 8km를 채웠다. 기쁘게 샤워를 했다. 이 땀냄새는 바로 옷 빨래를 해야 할 정도지만, 행복하다.
이제는 알고 있다. 무릎이 아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과도한 자신감에 달리기 전후로 준비운동을 안 했다는 게 가장 큰 패착이라는 것을, 그리고 수영도 힘을 과도하게 주고 있다는 것을, 겸손하면서도 힘을 과하게 주는 부담스러움을 없애야 한다. 달리기는 꾸준함을 수영은 겸손함을 선물하길 바란다. 나는 서울에서 전세 사는 유산소 러버다.
달리기: 거리 8km, 7.24분/km, 총 59:17초
수영: 1번 출석, 3번 결석, 자유형 숨쉬기 어려움, 자유수영 도전 못함.
기타 지표: 의미 있는 것을 4주 내로 발굴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