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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주_얼마나 달려야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전세 사는 유산소 러버

 달리기를 시작했던 2022년 11월 30일, 그 급발진에는 다 원인이 있었다. 내 몸에서 발산하는 마지막 경고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몇 주전인 11월 9일, 나는 한 회사의 컨설팅을 마치고 그간 일했던 자료를 모두 포맷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자료야 모두 포맷을 하겠지만 그간에 있었던 숱한 회의와 쪼임과 윽박지름과 고개 숙임이 몸에 그대로 들어차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실실거리며 '욱'하는 마음을 '웅'하는 모습으로 변형해야 했던 그 몸의 동작은 어딘가에 계속된 스트레스로 쌓여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뿐이겠는가. 스트레스 해소를 목적으로 결국에는 축적의 힘이 센, 술과 음식을 넣다 보니 몸은 점점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됐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어렴풋한 감지는 대부분 몸의 알아차림에서 온다.


 아 뭔가 몸이 안 좋아진 것 같다.


사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온몸에 한가득 스트레스를 가지고 사는데 또 그것을 견디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상당히 큰 조직에서 10년간 일했었는데,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회사 나온 것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마도 지금까지 다녔으면 분명히 몸이 아팠을 거예요'라고 묻지도 않은 방향으로 대답을 하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조직에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은 조직은 그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에서간 몸은 그렇게 환경에 맞춰서 그 간의 삶의 궤적을 충실히 드러내준다. 


 처음 달리기를 했을 때, 유튜브 30일 달리기를 봤다. 30초를 뛰다가 30초를 걷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첫날이다. 그리고 1분을 뛰다가 1분을 걷는 것이 또 반복이고, 그렇게 달리기 시간을 늘려가면서 된다는 이야기였다. 30일을 꼬박 채워가면서 유튜브대로 할리는 만무했지만 결국, 그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몸에서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체중의 증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릴 적에 달렸던 기억만 떠올리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러닝화'도 구매하지 않고 영하 온도에 뛰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전력질주를 했는데, 웬걸 첫날은 그런대로 넘어갔는데 둘째 날에 바로 종아리에 심하게 근육통이 찾아왔다. 괜찮겠거니 조금 걷다가 뛰었더니 바로 종아리 경련이 일어나서 뛸 수가 없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칼바람에 몸은 금세 식어서 추워졌다.


 어떤 면에서 나는 평균보다 나을 수 있지만 대부분 면에서 평균이거나 그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먼저 뛰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다음 날 바로 신발을 알아보게 됐다. 나보다 먼저 뛰었던 지인에게 물어보고 러닝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데카트론이라는 매장에 가서 달리기 용품을 구입했다. 먼저 무릎 보호대와 테이핑, 장갑, 귀마개를 샀다. 며칠 한의원에 가서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는 치료를 받았다. 3일 정도 쉬고 나서 30일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유튜브로 2주간은 그대로 따라 하다가, 다시금 거리를 늘리고 싶어서 천천히 뛰더라도 홍제천을 한 번쯤 벗어나보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홍제천의 첫 다리가 나오는 구간이 약 1.5km이다. 그곳을 넘어가면 가장 큰 관문이기도 했던 2.5km 거리의 다리가 있다. 또 그것을 넘으면 3.5km, 또 넘으면 4km 정도가 나온다. 다리의 구분이 달리기를 위해서 만들어 놓지는 않았겠지만 특별히 측정하지 않아도 다리를 넘는 구간으로 달리는 거리를 어림잡을 수 있었다. 3주 차까지 첫 다리를 지나쳐서 뛰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그 시절 목표는 '오늘은 저기 높이 제한 2.2m 있는 곳까지 달려가리라'였다. 높이 제한 2.2m 표지판은 첫 번째 다리와 두 번째 사이 다리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할 때 긴장되듯이 다리를 건너가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다리를 건넌 것은 달린 지 3주가 지났고, 집에서는 2.5km, 왕복 5km가 떨어진 구간이다. 그 구간을 넘을 때 어찌나 떨리던지.


 이후에는 쉽게 거리를 넓힐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4km 떨어진 곳은 사천교인데, 그곳까지 가니,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버스들이 지나다녔다. 홍은사거리 큰길에서 모래내 큰길까지 뛰어가다니, 내가 대견했다. 그래도 몇 번을 망설이다가, 사천교를 넘어서 마포까지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래야 홍제천을 벗어나 한강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욕이 상당히 앞서던 때, 새벽녘 내린 진눈깨비가 얼어붙어 바닥이 빙판인데도 한강을 꼭 가고야 말겠다면서 뛰었었다. 결국에 빙판에 한 번 엎어지기도 했고, 발목과 무릎에 상당히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리에 힘을 주고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버스와 자전거로만 가던 마포 중앙도서관의 네온사인이 보이고, 지류인 홍제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을 만나보고, 여러 연인들이 주말에 앉아서 합정 호수공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지나치며 나 홀로 운동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만끽하는 것 등등이다. 큰 맘먹고 뛰었던 곳은 여전히 그 위치가 생생한데, 총 18.04km 뛰었을 때, 큰 전신주가 있었다. 그 전신주가 또 다른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3월 6일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뛴 이유는 바로 건강검진 때문이었다.


 100일 지났을 때쯤, 건강검진을 했다. 상당히 떨렸다. 뭐 큰 거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나, 원래 가족력이 있어서 당수치도 높고 혈압도 항상 높은 편이었는데, 이게 3개월 달린다고 되는 일인가 싶은데, 여전히 체중도 키에 비하면 과체중인 상태이고, 걱정이었다.


 혈압은 재 측정 이후 정상으로 나왔고, 당뇨나 기타 수치가 경계이기는 했으나, 이상은 아니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동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나왔을까 싶었다. 체중은 약 5kg 정도가 빠졌는데, 그 정도가 안 빠졌으면 또 어떻게 나왔을까. 이런저런 마음에 다행이다 싶었다. 달리기를 인도해 준 형에게 전화를 했다. 고맙다고, 형님이 아니었으면 몸이 안 좋았을 텐데, 검진이 그래도 살아있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모임 일정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다리를 건너는 욕심을 품어본다. 이 욕심은 그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제대로 운동을 하지 않은 나에게 온 불편과 대가이다. 운동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무릎의 통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운동하지 않고 죽을 거였으면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찾아올 아킬레스건과 같았다. 회사 다녔을 때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멈칫했던 부위가 꼭 달리기 하다가 아팠던 부위와 같았다. 몸의 버릇이 그대로 쌓여서, 오른쪽 무릎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지난주에 일주일 3번 달리기를 하면서, 5km, 5km, 8km를 뛰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다시금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은 살아남기의 방식일 수도 있으나, 그간 생활습관이나 전반적인 변화가 없이는 계속 고통이 수반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성과 의지로 갈음해서는 안 되는 계획과 실행, 그리고 현실이라는 점이다. 몸이 자산인 나는, 애를 쓰면서도 애를 쓸만한 힘을 갈고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동아마라톤 신청은 이미 끝났다. 친구에게 반가운 메시지가 왔다. 동아마라톤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끔 추가 모집이 된다는 것,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이미 마감이긴 하지만, 그 기회를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 1년 전에 시작한 달리기, 또 다른 1년이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달리기: 4.85km + 4.05 km + 8km, 마지막에 6.35분/km

 수영: 4일 중 3일, 여전히 자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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