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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리더십] 진성리더십의 개념과 고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20기

 이번 주제는 진성리더십의 개념이다. 요약하면, 진성리더십은 익숙한 단어, 진정성을 세분화하면 조금 더 그 표현이 명확해진다. 진정성의 첫 단계는 내 진심을 바르게 하는 단계로써(眞正性), 한문으로 참진에 바를 정이다. 이는 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후에 등장하게 될 진성리더십의 정신모형 1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 진심이 우리에게 마음을 울리는 단계(眞情性)로써 한문으로 참진에 정이다. 이것이 나를 넘어서 타자와 사회로 확장되는 정신모형 2단계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진실의 열매(眞實)까지 맺게 되는 것이 진성리더십이다. 


 진성리더십은 나를 충분히 이해하는데서 시작해, 그것이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공감과 자극이 되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이다. 모든 철학은 결국에 존재와 관계의 역설과 협상 혹은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진성리더십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철학적 면모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철학이 그러한 논리를 다루는데 필요하다면, 동시에 고민해 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현실성 있게 다가설 수 있는가, 거기서 발생하는 인간적 고뇌, 도달하기 어렵다는 불안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성 리더십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는 상당한 성찰과 실행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간디는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말로써 진성리더를 표현했으나, 진성 리더로서 고민하는 이에게 죄인이라는 성찰을 매일 안겨준다는 점은, 전혀 성찰하지 않는 이들이 즐비한 시대적 상황과 인간적 먹고 살기라는 장벽 앞에서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가지 정도 질문을 통해서 그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보완의 의견을 정리해 본다. 

  

 먼저, 유사리더와 진성리더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유사리더와 진성리더는 바깥으로 꼭 드러나는지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대기업이나 관료조직과 같이 커다란 조직 내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 유사인지 진성리더인지 알 수는 없다. 어떠한 소문을 통해서도, 단정을 통해서도 알기는 어렵다.  조직자체의 사명이 적절한지 여부가 첫 번째 고찰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생활세계에서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일을 할 때, 그 일을 나에게 지시하는 리더나, 그 일을 수행하는 나나 진성리더에 가까운지 알 수 없다. 어떤 영역에서 빠릿빠릿한 일머리가 우선될 수 있고, 심사숙고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게다가 내가 가진 역량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직 내에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북돋아주는 리더가 진성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것이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친절하고 매혹적인 방식일 수 있고, 어떤 면에서 겉으로 하는 방식은 냉정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리더의 목적이 구성원의 잠재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진성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라는 인간이 진성으로 접근한다고 했을 때 모든 영역에서 진성리더십을 보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적성과 자원은 제한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제한을 돌파하는 것마저도 진성의 방식일 수도 있으나, 나에게 맞지 않은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첫 번째인 진성리더십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방식일 수 있다. 동시에 조직에서도 조직의 사명에 맞는 비전을 설계했더라도 한 인간의 무게보다 더 중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조직적 필요와 개인적 역량은 진성리더십의 관점에서는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과 진성리더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위에서 말한 대로 진실의 열매 곧, 결과를 낸다는 것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과는 어떤 결과이여야 하는가? 여기에서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기 하지만, 관계나 공동체 범위의 넓고 좁음에 따라서 리더이냐 아니냐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뻗어 나오는 매일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순간과 상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상 진성 리더십에서는 묻는다. '죽어서 어떻게 기억되는가?'라고, 이는 진성 리더십이 평생의 과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짧은 순간으로 좋은 사람과 진성 리더를 구분하기는 어려울 있다. 황금률대로 행동하거나 잠재력을 이끌어주는 좋은 사람과 소위 '각성사건' 이전의 진성을 찾지 못했던 현재의 진성리더가 있다면, 좋은 사람과 진성리더는 오히려 좋은 사람이 더 나을 수 있다. 좋은 사람의 좁은 범주에 발휘하는 자신의 진정성과 그것의 감화된 좁은 영역의 진정성이 성립되는 것은 아닐까? 진성리더십을 갖춘 이후에도 '결과'의 경중이 필요하다면, 그 과업이 가진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만으로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단정적 판단일 수도 있다. 


 개념이 가진 이상에 덧붙여 삶의 대지위에서 발이 닿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시금 물어보는 질문은 현실이라는 굴레기 아니라 굴레에도 불구하고 북극성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가짐과 작은 실천이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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