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된 성큼 이
오후 2시 약속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아들아, 지금 할머니랑 식사 마치고 출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술을 석 잔 정도 드시더니 괜찮으실라나 모르겠다."
토요일 치과치료를 받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약속보다 늦는다고 전화가 왔다.
"할머니 술 드시고 괜찮겠어요? 성큼이 얼굴도 못 보고 주무시는 건 아니고요?"
전화기 속으로 '어머니, 성큼이 보고 싶으시죠?'라고 할머니에게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대답을 원한 질문은 아니었다.
"너네 주려고 포장 갈비도 샀는데 잠깐 주차장에서 성큼이 보면 될 것 같으네."
"네 알겠어요."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맘만큼 세심하지 못한 내 목소리에 내가 실망스럽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자기 의견을 돌려 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까. 갈비를 샀다는 말 한마디와 술 드신 시어머니의 상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말, 그 미묘한 구석에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에게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를 부축하는 고모가 성큼이를 보러 오셨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내와 나는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했을 것이다. 별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없는 아들 내외에게 말은 못 하지만 어느 한 구석 허전한 마음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어서 웃음으로 넘겼을 시간이었지만 이제 어른들은 비로소 그 간의 기다림을 말할 수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삶은 그토록 행복한 순간이나 기다렸던 순간이 순수히 다가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노환과 치매가 겹쳐있다. 아이에게 줄 복돈을 고이 준비했다가 잊어버려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셨고, 반으로 접힌 만원 몇 장이 자크 달린 바지 주머니에서 어렵사리 나왔다. 그리고 몇 분 뒤 할머니는 "애 돈 줬느냐?"며 다시 물었다. 복돈을 줘야 한다는 유년 시절의 버릇이 행위까지 발현되기에는 수많은 기억과 행동이 필요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그 에너지를 원숙히도 쓰셨다. 또 다른 아이처럼 아이를 만지며 안고 계셨다. 아이 및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한 어머니와 고모는 아이를 이제 유모차에 태우라고 한다. 할머니는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를 안아야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할머니는 어떠한 생각을 거치며 순간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
성큼이는 어른들의 아이 같은 놀음과 눈망울에 울지 않고 어른스럽게 있었다. 물론 아내는 아이의 컨디션을 좋게 하려고 타이밍 맞춰 낮잠도 재우고 젖도 먹였다. 아이가 순하다는 말은 우리 부부에게 적절한 단어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행위 양식이기도 하다. 차 밖으로 아버지가 짐을 들고 있다. 짐 하나는 갈빗집에서 사 온 냉동 갈비 1.6kg과 어머니가 만든 반찬 그릇이 담긴 비닐봉지다. 다른 짐 하나는 어머니가 몇 번 집에 들르며 주셨던 반찬을 다 먹고 쌓아놓는 반찬 그릇을 담아 놓은 쇼핑백이다. 두 짐을 양손에 들고 아버지는 쓸쓸히 서있다. 그가 힘 꽤나 쓰던 사내였다는 것을 그 주변에서 모르는 이는 없다. 그 역시 초로한 노인이 되었으면서도 그 옛날 무거운 짐을 혹은 점점 무거워지는 나를 들었던 그 버릇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건강히 급격히 나빠진 아버지는 이제 힘찬 기백이 많이 사라졌다. 어린이날 하루 전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와 퇴근길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이셨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와 남편이라는 존재는 그 깊이와 무게의 종류는 전혀 다를 것이다. 가족이라는 실타래 속에 엮여있는 무촌 관계와 일촌관계는 가장 겹쳐있으면서도 가장 분리가 필요하기도 하며 가장 끊기 쉽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관계이다. "더 이상 기억 못 하는 아버지에 대한 간호를 어머니가 해서는 안돼요. 무조건 어머니가 편하신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라는 건조한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저녁을 먹었다. 아이 기저귀를 갈았다. 아이가 운다. 전념을 다해 우는 아이 앞에서 나는 웃음이 났다. 동시에 전념을 다해 나를 키웠을 아버지의 힘없는 웃음 앞에서 내가 웃는 것이 마음을 다한다고 느꼈다. 아이를 재우고 잠이 들었다 깼다. 이후로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희미해져 가는 존재 앞에서 나는 아마도 거의 처음 몸에서 터지는 눈물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을 고개를 흔들며 막거나 양미간을 찌푸려서 참을 수 있는 형태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 이후로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옛 기억마저 부여잡으려다가 흩어진다. 성큼이의 이름을 결국 외우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어머니나 나 그리고 아내도 이름이 무엇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아이의 형체는 성큼이든 그 무엇으로 불리던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언어 이전에 자기를 부르는 다른 인간의 기척을 느낄 것이다. 성큼이의 뒤편에 서서 갑작스레 초로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살은 쭉 빠져서 벨트 가죽이 버클을 지나 허리를 한참 돌아 감싼다. 한 덩치 하던 그의 몸을 탱탱하게 버티던 티셔츠도 이제 축 쳐져있다. 아버지와 인생의 방향이나 고민을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당신이 나의 고민을 들으러 삶을 살았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고모가 모는 작은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고모와 어머니가 앞에 탔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뒤에 탔다. 손을 흔드는 앞좌석의 두 여인의 삶으로 지탱되는 나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삶. 관계로 맺어진 몸뚱이들이 좁은 공간에 있고 그것을 가족이라 한다면, 때론 느슨하게 마음을 다하다가 몸이 상하지는 않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하는 것이 자기 위로만을 위한 길이 아니길 빈다. 저녁, 아내와 냉동 갈비를 맛있게 구워 먹고 아이를 품 안에서 잠들다가 침대에 놓였을 때 세 번 실패했다. 아내는 다시 젖을 물리고 잠에 든다. 나는 글로 마음을 달래며 가끔 흐려진 모니터 속에 투명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