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서 들은 첫 번째 신호
아이들에게서 들은 첫 번째 신호
2009년, 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지구가 아프다는 걸 느낀 적 있니?”
아이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땐 누구도 지구의 이상 신호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지구가 이미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는 것을.
깨어나는 동토와 잊힌 기억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빙하는 더 빨리 녹고 있고 영원히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동토가 깨어났다.
그 속에서 깨어나는 고대의 DNA는 지구가 스스로 꺼내는 잊힌 기억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지구는 우리에게 조용하고 단단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기억하라. 그리고 멈추어라.”
지형이라는 오래된 언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남긴 기록보다
지구가 남겨 놓은 주름과 균열이 더 정확한 역사를 말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산의 결, 강의 흐름, 절벽의 방향…
이 모든 것이 흙과 바람, 물과 빛으로 쓰인 지구의 문장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지구의 심장박동’
태항산의 절벽에서, 신선거의 협곡에서, 바이칼의 얼음 아래에서 나는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나를 잊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여행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지구의 심장 박동을 듣는 기록 작업이 되었다.
한복 자락에 스치는 바람
나는 세계 어디를 가든 한복을 입고 걸었다.
한복 자락에 스치는 바람이 마치 지구의 작은 신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지구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사이에서 나를 중심에 세워 주는 기억 장치였다.
지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절벽의 세로 선은 지구가 얼마나 긴 시간 버텨 왔는지 를 말해주고,
협곡의 바닥 조각들은 바람과 물의 역사를 들려준다.
나는 카메라로 풍경을 찍었지만 그 안에는 늘 지구의 기억이 녹아 있었다.
여행자는 풍경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가 들려주는 말을 잠시 받아 적는 사람이다.
이제, 지구의 목소리를 기록하려 한다
이 연재는 거대 담론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지구가 어떤 언어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
함께 귀 기울여 보자는 작은 제안이다.
나는 앞으로
태항산의 비나리길, 신선거의 협곡,
유럽의 상처 난 계곡과 아시아의 고요한 산맥, 그리고 한국의 들길 사이에서 들었던
지구의 목소리들을 천천히 풀어내려 한다.
지구의 기억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선명하게 살아 있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기록해야 한다.
그 일을 감히 내가 맡아보려 한다.
지구의 기억을 듣는 사람으로서.
2025년 11월 18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