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지나, 남아 있는 것으로 살아가는 법
해발 3,800미터, 숨을 들이쉬는 일조차 버거운 고도에서, 나는 오래 바라던 풍경과 마주했다. 끝없이 펼쳐진 티티카카 호수였다. 바람은 가볍게 흔들렸지만, 물결은 크게 일지 않았다. 고원 깊숙한 곳에 갇힌 듯 고요한 호수는 바다보다 더 넓고, 바다보다 더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바다가 없는 나라에도 해군이 있다는 것.
볼리비아 해군은 이 호수를 지킨다. 처음에는 그것이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호수에 해군이 있지?’ 그 단순한 의문은 풍경보다 더 깊은 질문을 이끌었다. 가이드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잃어버린 바다 대신 이 호수를 지킵니다.”
그 말은 묘하게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잃으면 그 상실에 오래 잡혀 산다. 잃은 사람을 생각하고, 잃은 기회를 떠올리고, 사라진 시간과 지난날의 강물 위에 서성인다. 그러나 볼리비아 해군은 달랐다. 그들은 잃은 것에 머물지 않고, 남은 것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잡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한 가지를 배웠다. 유연성은 포기가 아니라 재창조의 시작이라는 깨달음.
볼리비아는 바다를 잃었지만, 해군을 없애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신에게 남은 호수를 ‘지켜야 할 바다’로 다시 세웠다. 조건이 달라졌다고 역할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이 요구하는 가장 강한 유연성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없는 것만 헤아리며 산다. 잃어버린 건강, 떠나간 사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다시 오지 않는 젊음. 그러나 정말 우리를 붙들어준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 뜻밖의 호의, 잠시 스치는 햇빛, 숨을 쉬게 해주는 자연, 그리고 깊은 곳에서 천천히 회복되는 마음의 힘.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삶은 잃은 바다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남아 있는 호수에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라는 것.
해군이 호수를 순찰하는 모습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파도가 없는 호수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그들은 더 섬세하게 노를 잡아야 한다. 숨이 가빠지는 고도에서는 작은 움직임에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들의 하루는 바다의 해군보다도 더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맡은 역할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강함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것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삶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많은 사람이 멈춰 서거나 방향을 잃는다. 그러나 결국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없는 것’에 좌절하기보다, ‘남은 것’에서 의미를 발굴해 내는 사람이다.
여행은 종종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태도를 보여준다. 날씨가 어둡고 바람이 차가워도 그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여행의 전체를 바꾼다. 그리고 그 태도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의 방식으로 남는다.
티티카카 호수의 해군을 본 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금 내 삶에 남아 있는 호수는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잃은 바다’를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시간이고, 누군가는 건강이며, 누군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잃은 것을 바라보는 시간만큼은 새로운 길을 만들지 못한다. 대신 남아 있는 것으로 작은 노를 잡아 호수를 건너는 사람이 된다면 삶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티티카카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지만, 그 풍경이 전하는 메시지는 낮고 따뜻했다. 남아 있는 것을 지키는 마음. 결핍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 환경을 이기려 하지 않고, 환경 속에서 나를 다시 조율하는 유연성. 그 모든 것들이 호수의 바람에 실려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날 이후, 삶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없어진 것들을 헤아리며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는 남아 있는 것들 속에서 작은 길을 찾으려 한다.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길을 잃고,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면 다시 길이 열린다. 여행은 화려한 풍경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더 단단하게 살아낼 태도를 남긴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한 문장을 가만히 되뇌었다.
“삶은 잃어버린 바다를 되찾는 여행이 아니라, 남아 있는 호수로 길을 내는 항해다.”
2025년 11월 19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