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먼저 알려준 세계, 혹등고래가 남긴 깊은 목소리
육지의 끝에서 배운, 아주 오래된 문장 하나
우수아이아의 바다는 언제나 낮게 숨을 쉬고 있었다. 파도는 작은 음절처럼 이어지고, 바람은 그 음절 사이를 지나며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문장 속을 천천히 걸어가며 왜 이곳이 ‘지구 끝’이라 불리기 시작했는지 깨달았다. 끝이라는 말은 종종 완성을 뜻하지만, 이 도시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품고 있는 여백 같았다. 우수아이아는 그런 도시였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오히려 삶과 자연의 중심을 다시 배우게 되는 곳.
바람이 먼저 알려준 세계
우수아이아의 바람은 단순한 기후 현상이 아니었다. 그 바람은 방향보다 마음을 먼저 흔들고, 차가움 속에 어떤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었다. 바람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바람이 ‘고래의 시간’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래가 지나간 자리에서 가장 먼저 요동치는 것은 바다도, 파도도 아닌 바람이었다. 바람은 고래의 숨이 남긴 흔적을 도시에게 가장 먼저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였다. 나는 그 작은 떨림 하나를 통해 세계가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느꼈다.
혹등고래가 남긴 깊은 목소리
혹등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먼 길을 여행하는 생명이다. 누군가에게 길을 배운 것도 아니고 육지처럼 표시된 길도 없다. 그들은 바다의 온도, 염도,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구의 떨림을 읽으며 기억 속에 새겨진 길을 따라 해마다 돌아온다. 우리가 길을 잃을 때마다 지도를 펼치고, 검색창을 두드리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과 달리 혹등고래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그저 세계의 아주 미세한 변화를 듣는다. 그 단순한 태도 속에 나는 오래된 지혜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 삶은 때로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들은 바다를 읽고 나는 그 고요한 움직임을 읽었다.
고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혹등고래는 인간을 경계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고래가 수면 가까이 몸을 올리며 배 주변을 천천히 선회했다. 물결이 느리게 흔들리며 고래의 눈이 나를 향해 멈춰 섰다. 그 눈에는 판단도, 두려움도, 적대감도 없었다. 대신, 아주 오래된 생의 고요가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장면들을 그저 ‘풍경’으로만 지나쳤는지 깨달았다. 고래의 눈은 우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너는 무엇을 잊고 사는가?”
그 질문은 바닷속보다 더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단순한 진실을 그 큰 눈이 조용히 되돌려주었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인간에게 들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람이 고래의 울음을 데려오는 순간, 나는 그 소리가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오래된 생의 언어라는 걸 깨달았다. 과학은 고래의 노래를 주파수와 패턴으로 분석하지만 그 노래는 분석되는 순간 이미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고래의 울음은 바다가 지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깝다. 고래를 연구해 온 영국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인간을 위한 음악이 아니에요. 다만 이 세계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죠.”
사람에게 들리려고 만들지 않은 소리가 사람 마음을 가장 깊게 울리는 것-그게 혹등고래의 노래였다. 우리는 때때로 이해보다 ‘느낌’으로 먼저 다가오는 진실이 있다는 걸 고래의 음성에서 배우게 된다.
빛이 고래의 등을 가만히 스칠 때
해가 낮게 내려앉은 오후, 수면 위로 떠오른 혹등고래의 등에 한 줄기 빛이 머물렀다. 그 순간, 설명도 의미도 필요 없었다.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었다.
“모든 생명은 자기만의 속도로 흐른다.”
그 문장은 고래의 등, 바람의 떨림, 파도의 호흡 위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지의 끝에서 배운 오래된 문장 하나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날, 바람은 여전히 서늘했고 하늘은 끝없이 깊었다. 나는 혹등고래가 남긴 침묵을 떠올렸다. 그 침묵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세계의 숨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거대한 증거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아주 오래된 문장 하나를 얻었다.
“세상은 우리가 배운 것보다 훨씬 깊다.”
“그리고 그 깊이를 이해하는 일이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이다.”
우수아이아는 끝의 도시가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질문과 문장을 심어준 시작의 도시였다.
2025년 11월 25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