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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1인 40만 원짜리 식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왜 그토록 화려한 ‘밥’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베이징, 황제에게 올리던 음식을 재현한 연회였다.

그런데 공연이 끝났을 때

배가 고팠다.

불만은 없었다. 다만 이상했다.

이렇게 비싼 식사에서 왜 배가 고플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는 황제의 시녀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들은 중국 전역의 이름을 불렀고, 각 지역의 기후와 땅, 특산물을 설명했다.

대형 스크린에는 그 지역의 풍경과 재료가 흐르고, 설명이 끝나면

그 음식이 그대로 내 식탁 위에 놓였다.

무대와 식탁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먹지 못했다. 먹으려는 순간 다음 장면이 시작되었고,

다음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계속 바라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황제의 선택과 같았다는 것을.

황제는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황제의 식탁에는 중국 전역이 올라왔다.

산과 강,

기후와 계절,

백성의 노동과 땅의 상태가

한 접시씩 놓였다.

그래서 황제는

배부를 수 없었다.


그 식탁은

포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확인을 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2층 전시 공간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음식의 역사와 조리법,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약과 음식은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상황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제야 내 배고픔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식사는

나를 배부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생각하게 하려는 자리였다.


그날

황제처럼 먹지 못했고,

황제처럼 오래 바라보았다.

그래서 배가 고팠고,

그래서 오래 남았다.





2025년 12월 16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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