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묻혀 있던 기억의 발현
시베리아의 겨울은 모든 생명체를 가둔다.
움직임은 느려지고, 말은 줄어들며, 인간은 결국 자기 안쪽으로 접힌다. 그 겨울의 중심에서 나는 옷을 만들었다. 아니, 옷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꿰맸다.
두루마기와 모자, 그리고 가방.
그날 나는 바늘을 들었다. 기지와 순발력, 지혜가 동시에 발현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실은 알고 있다. 그것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의 발현이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옷을 지으셨다.
말이 없었고, 손이 많았다. 바느질은 삶의 일부였고, 옷은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곁에서 손을 배웠다. 가르침 없이, 설명 없이. 손은 그렇게 전수되었다.
노란색 겉옷은 걸작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지만, 내가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의 시간이 겹쳐졌고, 나의 겨울이 덧입혀졌다. 한복의 원형은 그대로 살아 있었고, 그 안에 새로운 추위가 들어앉았다.
그 옷을 입고 시베리아의 바람을 맞았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이, 과거의 시간이, 그리고 살아남고자 했던 모든 겨울이 함께 있었다.
다시 겨울이 온다.
나는 또 그 옷을 꺼낼 것이다.
손이 기억하는 겨울은, 언제나 가장 따뜻하니까.
2025년 12월 29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