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잊도록 학습된 인간의 감각
아름다움이라는 위험한 보증수표
바다는 평온했고
빛은 과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런 날이면 사람은 경계를 잊는다.
아름다움이 안전을 보증해 줄 것처럼 착각한다.
숨 한 번의 거리, 셔터 소리에 가려진 본능
사람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야생의 얼굴 앞으로 다가간다.
물개는 물 위로 몸을 세운다.
그 거리는 숨 한 번이면 닿을 만큼 가깝다.
사람들은 웃는다.
카메라는 셔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단하다”라고.
하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을 아무 질문 없이 소비하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적응했을 뿐이다
물개는 길들여진 적이 없다.
그저 반복되는 인간의 행동에 적응했을 뿐이다.
먹이가 얼굴에서 오고, 얼굴이 먹이가 되는 조건.
그 조건을 만든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교감’이라 부른다.
‘신뢰’라 말하고 ‘용기’라 포장한다.
그러나 자연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신뢰를 요구한 적이 없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괜찮다'는 최면
자연은 설명하지 않는다. 경고문을 붙이지도 않는다.
다만 결과로 말할 뿐이다.
여행은 언제부터 넘어서는 행위가 되었을까.
왜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더 잘 안다고 믿게 되었을까.
아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데도.
사람은 늘 “지금까지 괜찮았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언제나 사고 바로 전까지만 유효하다.
가해자가 된 자연,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사고가 나면 이야기는 바뀐다.
사람은 사라지고 동물은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자연은 또 하나의 이유로 처벌받는다.
그날, 물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바라보았고 사람은 그것을 교감이라 오해했다.
경계를 허무는 여행이 아닌, 알아차리는 여행
여행은 경계를 허무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이어야 한다.
넘어서기 위해 떠난 여행은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알아차리기 위해 떠난 여행은 사람을 되돌려 보낸다.
그날, 길들여진 것은 물개가 아니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위험을 잊도록 학습된 인간의 감각이었다.
2026년 1월 10일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