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서 얻은 질문들
문수보살의 산, 오대산에 오르면 사람은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된다.
산세가 험하고 높아서가 아니다.
더 이상 높아질 필요가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 산의 봉우리들은 날카롭지 않다.
뾰족한 욕심 대신 너른 평정을 택한 산.
그 부드러운 능선은 지혜란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라고 조용히 일러주는 듯하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석탑 앞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지혜는 결코 많이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끝까지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는 정직한 태도에 가깝다.
차가운 돌계단 위로 오체투지를 이어가는 수행자의 몸에는
깨달음의 환희보다 삶의 무게가 먼저 닿아 있다.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의 절 속에 삶에 대한 경건함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대산은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묵직한 질문 하나를 가슴에 남긴다.
그 질문은 산을 내려와 일상의 소란 속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래도록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온다.
이 산을 다녀온 뒤,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걷게 되었다.
섣불리 단정 지어 판단하지 않게 되었으며,
타인에게 내뱉는 말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고르게 되었다.
어쩌면 오대산이 건네는 가장 큰 가르침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지혜를 구하기보다 먼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 세우는 일.
2026년 1월 14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