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청력은 보통 태어나기 이전에 이루어지는데, 보통 임신 5개월(대략 20주 정도)부터 청력이 발달한다. 따라서 태아기와 갓난아기 때 생긴 말에 대한 지각(speech perception)은 2살 때의 언어발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의 듣기 능력은 15세까지도 계속해서 발달하지만, 생후 첫 3년이 청각과 뇌의 뉴런 사이 연결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이렇게 듣기를 통해 형성되는 이해능력은 이후에 전반적인 학업성취도에 높은 영향을 미친다.
(김예빈 교수, Family Storyteller Program 강좌 중에서, 4/29/2017)
결국 아이의 언어는 뱃속에서부터 꾸준히 말을 많이 들어야 발달한다. 선조들이 태교, 태담을 중요하게 여겼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즘 많은 젊은 부모들이 태교를 중요하다 여기게 된 데는 「창사 특별기획 5부작 EBS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의 영향도 있다. 태중 9개월이 아이의 신체기능, 성격, 뇌 등 아이의 전반적인 성장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태담의 효과도 어느 정도 증명해 내고 있다.
창사 특별기회 5부작 EBS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
임신 7주 경 산부인과에서 첫 진료를 받을 때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난 후 나는 그때부터 손을 배에 대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의 본능처럼 시작된 태담이었다.
“안녕, 아가. 엄마 목소리 들리니? 네가 엄마에게로 와서 참 기쁘구나.”
아이가 듣는지 못듣는지 별로 개의치 않고 혼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덧 임신 16주가 되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극 중 파가니니가 멋들어지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빵빵 크게 터져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뱃속에서 무언가 꿀렁하더니 스르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알고 보니 태동의 시작이었다.
그즈음 시작된 태동은 17주를 넘기면서 미세한 발차기로 이어졌다. 20주가 지나고 내가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손가락으로 배를 두 번 톡톡 치면 아이가 발로 내 배를 툭툭 차는 놀이가 시작되었다. 배에 원을 그리듯 빙글 돌아가며 톡톡 치면 아이의 발도 함께 돌아다니면서 내가 친 바로 그 자리를 툭툭 차며 놀곤 했다. 아이와의 교감을 통한 놀이는 이렇게 임신 중 뱃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이는 여자 목소리에 주로 활발하게 반응했고, 움직이다가도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면 태동을 멈추고 고요해졌다. 엄마의 손이 배에 닿으면 활발하게 움직이며 손이 닿은 부분을 발로 톡톡 차며 놀았지만, 아빠의 손이 배에 닿으면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와 손의 열기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태아에게 아빠의 목소리도 들려주자.
해외 장기 출장을 앞둔 남편에게 나는 몇 가지를 녹음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에게 하는 인사와 저녁에 잠자기 전에 하는 인사, 그리고 남편이 직접 부른 동요 몇 곡과 직접 읽은 짧은 동화 몇 편, 마지막으로 아빠로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씩 뱃속 아이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2) 신생아와 나누는 베이비 싸인( Baby Sign)
아이는 40주를 채우지 못하고 38주 차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생후 3주까지 먹고 잠만 자던 녀석이 한 달이 지나자 우는 소리 외에 뭔가를 옹알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산후 몸조리를 도와주시던 부모님이 모두 한국으로 가신 후, 6주가 된 아이가 ‘음마맘마마’ 라고 옹알대기 시작했다. 별 의미 없는 옹알이일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는 변함없이 아이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었다.
분유나 젖을 먹을 때가 되면 나는 아이를 안고 웃으면서 ‘맘마 맘마, 맘마 먹자’라고 말했고, 졸리거나 놀고 싶어 하면 ‘엄마엄마 우리 엄마, 엄마 품에 안아볼까’라고 리듬감 있게 읊조렸다. 그렇게 아이는 자연스럽게 맘마와 엄마를 구분했고, 생후 두 달이 지나자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8주가 다 되어갈 무렵, 아이가 졸리다는 신호로 양팔을 올리며 ‘으엄마, 으엄마’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또렷한 발음에 놀라 웃으면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자 잠시 후 아이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생후 두 달이 되자 졸리거나 놀고 싶으면 ‘엄마엄마’라고 의사를 전달했고, 배가 고프면 ‘맘마 맘마’라고 하면서 분유나 젖을 찾았다.
그 무렵 나는 신생아 아기를 두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Baby Sign"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옹알이를 듣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측하고 의사소통을 시도하면 육아가 편해진다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접한 후 산 책이었다.
돌 전 아이와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아기들은 엄마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눈치껏 파악하여 엄마의 의도를 얼추 짐작한다. 또한 말을 하지 못해도 엄마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얼굴 표정과 손짓 그리고 옹알이를 최대한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무언가를 달라고 할 때 오른손 또는 왼손을 내밀며 ‘잼잼’ 손짓을 하곤 했다. 그때 내가 ‘주세요?’라고 확인하듯 물으면 아이는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짧게 끄덕거렸다.
‘곤지곤지 곤지곤지 잼 잼 잼~’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고 말해 왔던 아기 노래는 결국 ‘베이비 싸인’이었다.
3) 옹알이
보통 생후 4개월에서 6개월 이후에 많은 아이들이 옹알이를 시작한다. 주로 유사 모음 ‘어, 아, 이’로 시작해서 점점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온전한 음절 형태로 발성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바바바, 마마마, 빠빠빠’와 같은 말들이다. 이러한 옹알이는 이후 언어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생후 6개월 이전에 옹알이를 많이 하는 아기일수록 지능이 높고, 만 2-3세 이후에 다른 아기보다 더 많은 어휘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예빈 교수, Family Storyteller Program 강좌 중에서, 4/15/2017)
아이의 옹알이에 부모가 얼마나 반응을 잘해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언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온전한 언어 형태를 갖추어 나간다. 그렇다면 아이의 옹알이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 주어야 할까.
예나 지금이나 많은 부모들은 딱히 배우지 않아도 이미 아기의 옹알이에 반응해 오고 있다. 아이의 첫 옹알이에 미소를 짓고 환호성을 지르며 ‘어머, 우리 아기 말하고 있어요?’ 내지는 ‘우리 아기 옹알옹알 무슨 말해요? 엄마한테 할 말 있어요?’ 등의 다양한 반응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언어 자극은 아기들이 더 활발하게 옹알이를 하게끔 유도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아기의 옹알이에 등을 쓸어주거나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짓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비언어 자극도 아기의 언어능력을 충분히 일깨워 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아기의 옹알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자. 아이가 내는 소리를 정확하게 흉내 냄으로써 충분히 의사 전달이 되었음을 아이에게 확인시켜 준다. 부모가 목소리를 최대한 재미있고 다양하게 낼수록 아이의 청각을 자극하는 정도가 커진다. 그러면 아이도 부모의 소리를 빨리 따라 할 수 있게 된다.
4) 그런데 8개월 아이와 대화가 가능한가요?
아이가 8개월 무렵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유모차에 앉아 외할머니와 양평 꽃마을을 둘러보며 산책을 한 아이는 피곤했는지 분유 한통을 뚝딱 마시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든 아이는 우리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사이 두 시간 가까이나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다. 낯선 식당 모습에 어리둥절할 만도 한데 아이는 울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방실방실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아기 카싯 안에서 답답했을 아이를 꺼내 기다랗고 푹신한 부스 벤치에 눕혀놓고 팔과 다리를 쭉쭉 펴주며 전신 마사지를 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시원하다는 듯 기지개를 켠 후에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 아가, 푹 잘 잤어요? 아고, 이뻐라. 할머니랑 엄마가 편히 점심 먹으라고 얌전하게 푹 잠을 잘 자 주었네. 아고, 기특해라. 이리 의젓하게 잘 있어주어서 정말 고마워. 엄마랑 할머니는 우리 아가 뱃속에 있을 때 좋아했던 돈까스를 먹었어. 나중에 커서 이가 나오고 고기 씹을 줄 알게 되면 그때 또 오자.”
그때 옆에 돌 정도 되어 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가 슬쩍 보더니 부부끼리 몇 마디 주고받았다.
“이제 칠팔 개월 된 아기가 뭘 얼마나 알아듣는다고 저렇게 말을 거나 모르겠네.”
이이 아빠가 아이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다.
“글쎄. 요즘엔 아이랑 저렇게 대화 나누는 엄마들도 있다고 하네.”
“근데 애가 알아는 듣냐? 뭘 알아듣는다고.”
아이 엄마의 말에 아이 아빠가 코웃음으로 받아치기에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못 알아들을 것 같죠? 근데 신기하게 애들은 다 알아 들어요. 평균 4개월 이상이면 눈치로 엄마 말 대충 알아듣는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7개월이면 충분히 훈육도 가능하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나는 보라는 듯 아이를 향해 손뼉을 두 번 치고 양팔을 벌렸다.
“오공아, 엄마가 안아줄까?”
그러자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양팔을 벌려 내게 손을 내밀어 잼잼을 해 보였다.
“엄마, 엄마.”
“보세요? 다 알아듣잖아요.”
그러자 그 부부는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네. 정말 알아듣네요.”
그 집도 내 아이 또래, 아니 개월 수가 더 많은 딸아이를 옆에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딸아이가 깨어 있음에도 그들의 대화 안에 한 번도 끼워 넣지도 않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육아는 힘들다. 밥 먹는 동안 아이가 칭얼대면 대책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만 준다면 땡큐다. 그렇기 때믄에 육아에 지쳐 힘들 때는 굳이 애써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애를 쓸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만사 일을 제쳐두고 쉬어야 한다. 그래야 육아를 할 힘이 생긴다.
그런데 아기가 뭘 알아 듣겠니 하는 생각으로 대화에서 소외시키거나 상호작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 아이의 눈은 그 어떤 의욕도 호기심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의 언어성장 발달이 늦어지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항상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아이와 상호작용을 잘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기질이 순한 아이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조금 느리게 반응하거나 신중하게 관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을 밎추고 환하게 웃어보자. 이때 부모와 눈을 잘 마주치고 함께 잘 웃는다면 이 아이는 기질이 순한 경우이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기질이 각각 달라도 부모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아이가 당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면 뭐라도 사소한 말 한마디를 걸어보자. 그 말이 당신 아이의 뇌를 깨우는 중요한 트리거가 될 것이다. 아이의 언어는 많이 듣고 말해야 발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