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엄마들의 걱정, “SAT 점수는 높은데 에세이 쓰는 걸 너무 힘들어해요. 이중 언어 스트레스 때문일까요?”
몇 년 전 8월, 긴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시달리던 엄마들이 오랜만에 로컬 리조트 뷔페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두어 시간의 브런치 미팅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네바다 사막에 잠시 내렸다 가는 반가운 소나기 같았다. 여자들만의 수다는 어찌 그리도 달콤하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스펙터클 한 지 내 얘기, 남편 얘기, 자식 얘기, 그리고 한미 외교관계와 국제 정세 및 문화 이모저모에, 마지막으로 한국과 미국의 교육 환경까지 아우르며 즐거운 토론이 진행된다. 일명 종합 패키지다.
전직 영어학원 원장(고씨), 전직 뱅커이자 은퇴한 대학 강사(로즈), 그리고 소설가이자 전직 대학 강사였던 나(이씨), 이렇게 여자 셋이 만나 요즘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의 독서와 글쓰기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SAT 점수도 높고 수학, 과학도 잘하며 책도 많이 읽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우리 한국 아이들이 어째서 에세이 쓰는 것을 힘들어하고 두려워할까요?”
우리 아이들은 만점에 가까운 학업 성적을 받으면서도 막상 토론 수업에 들어가면 손을 들고 발표하는 데 쭈뼛거리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더욱 이상한 것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대화를 나누거나 독해력 테스트를 하면 기대했던 것만큼 이해력이 높지 않다고 한다. 이는 에세이를 쓸 때 총체적인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어휘력, 표현력, 핵심을 꿰뚫어 보는 혜안, 사고의 다양성, 그리고 글 쓰는 방식과 문법까지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단다. 로즈의 말에 의하면, 우리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은 조금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많은 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이중 언어 스트레스 때문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yes’ 일 수도 ‘no’ 일 수도 있다.
(2) 원래 말보다 어려운 게 글쓰기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적, 지적 발달에 별 문제가 없는 아이들의 언어발달은 특정 언어에 대한 노출 빈도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한국말이 유창한 부모에게서 성장하는 6살 미만 아이들이 가정에서 한국말에 더 많이 노출된다면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익숙할 수 있다. 그런데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일찍부터 데이케어나 프리스쿨을 다니기 때문에 영어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므로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익숙한 경우가 많다.
한국말이 익숙하든 영어가 더 익숙하든 이중 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 모두 나름의 스트레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부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부모가 아무리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더라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이상 미국에서 한국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겪는 이중 언어 스트레스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중 언어 스트레스 때문에 미국에서 성장하는 우리 한국 아이들이 에세이 쓰는 것을 힘들어하고 책 해석력과 독해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 실제로 아시안 아메리칸 어린이들의 이중 언어와 발달에 대한 조사(http://aaari.info/notes/08-02-22Jia.pdf)에 따르면, 부모의 모국어를 잘 이해하고 유창하게 말할 줄 아는 아동이 영어도 빨리 배운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주말에 한국학교나 중국 학교를 다니는 아시안 아메리칸 아이들이,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 비해, 영어 어휘력 발달도 미세하지만 조금 더 우세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kbABw7sR8I
다만, 한국어와 영어를 어려서부터 동시에 배워나가는 경우는 말문이 조금 늦게 트이거나 조금 느릴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이중 언어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걱정하여 영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 경우 하나의 언어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이든 언어가 완벽하고 능숙해지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좀 더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중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두뇌에 긍정적 자극을 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어째서 에세이 쓰는 걸 힘들어하냐고?
그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소설가도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쓸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택한 모든 어휘, 문장, 글에 의미를 부여한 만큼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생각의 여과 없이 쉽게 내뱉는 말의 속성을 알고 있으므로 ‘말실수’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지만, 글은 자신의 생각이 여과되고 정리되어 쓰이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한 번 공개되고 나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부모가 올바른 대화 방법으로 꾸준히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 부모 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3) 주 양육자가 가장 익숙한 언어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어야 아이의 언어능력이 최대한 발현된다.
몇 년 전, 이미 장성하여 명문대학을 다니는 두 아들이 있는 어떤 한국인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교육 환경도 좋고 이중 언어 스트레스도 잘 극복해 낸 듯 보이는 가족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엄마는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하나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고도 영재(Highly gifted) 판정을 받은 이 두 아이는 수학, 과학 분야나 다른 과목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는데, 이상하게 영어가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토론 수업이나 글쓰기에서 우수하기는 하나 최고 점수를 받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엄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상호 소통을 시도하지 않고 그저 읽어주기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추측을 했다.
나는 그 두 아들의 엄마에게 아이들이 한국말을 이해하고 말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냐고 물었다. 쉬운 한국말 정도는 이해하나 말로 대화를 나눌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커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은 했지만, 아이들의 아버지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엄마는 평소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아이들을 길렀다는 것이다. 일단 자신이 영어를 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책도 영어로 읽어주고 거의 모든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또는 반대로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경우가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많은 부모들이 서로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영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어에 능숙해도 아이들은 데이케어나 학교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집에서도 가족들이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선택하게 된다. 이렇듯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 환경 위주로 성장한 아이들은 미국 생활을 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이중 언어 스트레스가 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문화 가정, 어떤 언어로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할까?
사실 명문대를 다니고 있는 두 아들의 가정환경은 미국에서 꽤 일반적이다. 그리고 가정 내 교육환경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면서 독서 습관을 잘 길러 주었고, 더욱이 미국인 아버지가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연히 영어로 말하기와 글쓰기에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성장하여 영재 판정까지 받았다. 토론과 글쓰기도 수학, 과학처럼 최고가 아닐 뿐이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딱히 부족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만큼 에세이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사실 이것도 아이의 재능 및 성향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이 아이들의 재능이 언어능력보다는 수리능력에 좀 더 많이 치우쳐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 고민의 원인에 대해서 파헤쳐 본다면, 나는 주 양육자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언어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꾸준히 이중 언어 환경을 유지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았다면 아무리 영어에 익숙하다 할지라도 아이에게 감정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하며 이해시키는 데는 한국어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두 아들의 엄마는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까지 주 양육자로서 아이들 교육에 힘썼다고 하니, 주 양육자는 하루 종일 직장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두 아들의 엄마였던 셈이다.
물론 두 아들의 엄마가 언급한 것처럼,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호 소통을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긴 하다. 그것만으로도 엄마와 아이의 정서적 유대관계는 강화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엄마와 아이의 상호 소통이 얼마나 깊이, 얼마나 다양하게 이루어졌느냐이다. 만약 주 양육자가 가장 익숙한 언어인 한국어로 다양한 어휘를 이용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면, 아이의 언어능력이 좀 더 발현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언어 습득은 빠르면 뱃속 태아 시절부터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될 수 있다. 인간의 청력은 태어나기 이전 태아 시절에 이미 이루어지는데, 보통 임신 5개월(대략 20주 정도)부터 태아가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따라서 태중에서부터 신체기능, 성격, 뇌 등 아이의 전반적인 성장 발달이 이루어지므로 뱃속에서부터 꾸준히 소리를 듣고 말을 많이 들으면 좋다. 아이의 듣기 능력은 15세까지도 계속해서 발달하지만, 생후 첫 3년이 청각과 뇌의 뉴런 사이 연결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따라서 이중/다중언어 아동의 경우 이 시기에 다양한 말소리와 발음을 자주 들려주면 제2언어 습득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가정의 경우, 부모의 바람대로 꾸준히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들도 많다. 이들 중 대다수가 성장하면서 한국말보다는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의 언어에 더 익숙해지고 한국어로 대화나누는 것을 힘들어 하지만, 그럴지라도 어려서는 부모와 한국어로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강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 양육자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아이에게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아이의 언어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
(4) 프리스쿨이나 킨더 입학 후에도 부모의 모국어로 꾸준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집에서 계속 한국말로 아이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왜 한국어가 어눌할까요?
간혹 주변에서 이런 질문들을 하곤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모임이 있었을 때 그 가족의 언어생활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언어 사용에 대해 일관성 없이 대처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부모가 처음에는 자녀와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바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는 부모는 한국어로 자녀에게 말을 시키지만, 아이는 바로 영어로 응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는 한국말로 계속 대화를 하되,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이 되면 한국말로 그 뜻이 무엇인지 상황 설명을 바꾸어가며 차분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이해를 못 한다면 그 해당 어휘만 영어로 알려주되, 한국어 대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령기 전에 가족과 한국어로 대화를 하다가 학교에 입학한 후 영어에 능통해진 이중언어 아동들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어 단어를 잘 몰라도 문맥적 의미로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꾸준히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중언어 구사에 도움이 된다.
이쯤에서 이중 언어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안 아메리칸 아동의 언어발달 양상을 한 번 요약해서 살펴보자.
- 3살까지 모국어 위주로 성장한 아동이 그 후 영어학교에 나가면 전반적으로 말이 빠를 수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어려서부터 한국말을 잘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아동이 영어를 빨리 배우는 경향이 있다.
- 한쪽 언어의 어휘가 늘 때마다 다른 쪽 언어의 어휘 표현력도 함께 증가한다.
- 한국어와 영어를 어려서부터 동시에 배워나가는 경우는 조금 느릴 수 있다. 그런데 정상적인 성장 발달을 하고 있다면 나중에 별 무리 없이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 뭐든 어느 한쪽 언어의 글쓰기를 잘하면, 다른 쪽 언어의 글쓰기도 잘하게 된다.
(단, 어느 한쪽 언어의 글쓰기가 완벽하고, 나중에 다른 언어를 제대로 배웠을 경우)
- 맞벌이 부모의 경우, 가능한 집에서 부모의 모국어로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자.
- 매주 주말에는 지역 내 한인교회나 한인 단체에서 제공하는 한글학교 또는 한국학교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
- 거주 지역에 한국학교가 없다면, 가정에서 한국어책을 꾸준히 소리 내어 아이와 함께 읽거나 한국 프로그램을 짧게 시청하는 것도 좋다.
- 자녀의 이중언어 구사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부모의 일관성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가정 내에서는 가능한 모어(가족언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하자.
(5) 글쓰기 고민은 한국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 공통의 문제!
자, 이제 아이들의 글쓰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끌쓰기는 과연 우리 한국 아이들만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 단일언어 아동들은 이중언어 아동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글쓰기를 더 잘 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것이 비단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만의 문제일까요? 다른 미국 아이들은 대부분 에세이를 잘 쓸까요? 더 확장시켜 한국에서 모국어로 말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국 아이들은 또 어떨까요?”
내가 또 질문을 던졌다. 한국 대학에서 교양필수 과목으로 글쓰기 강좌와 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느꼈던 것은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한데 왜 논술 시험을 보고 에세이를 써 오라고 하면 글이 엉망인지 한숨을 쉰 적도 많다. 이는 비단 한국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아이들도 에세이 쓰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
2010년경 버지니아 텍에서 아시아학과 방문연구원으로 있을 때 영어영문학과 1, 2학년 학생들이 듣는 미국 근현대소설 전공수업과 3, 4학년 학생들이 듣는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전공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학기 초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들이 대부분 ‘빠꾸’ 당해서 다시 써 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일주일 후 학생들은 자신의 에세이를 완벽하게 수정해서 다시 제출해야 했다.
그때 담당교수는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30분간 에세이와 리서치 페이퍼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길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인터넷 숙제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여서 베껴서는 안 되며, 인용한 부분은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하고, 가능한 자신의 생각을 삼단논법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제발 인터넷 용어나 이모티콘 등을 보고서에 쓰지 말고 가능한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를 사용해 달라는 담당교수의 부탁이었다. 내가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했던 똑같은 말을 미국 대학 교수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글쓰기 고민은 한국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 공통의 문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들다.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 상호 소통에 방해가 되는 미디어 중독 미리 예방!
요즘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로, 많은 학자들이 인터넷 채팅과 SNS 발달의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바로 연락 가능한 초고속 IT 산업의 발달은 스마트 폰에서 텍스트(문자 메시지)를 빠르게 타이핑해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무의식 중에 자리 잡게 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이 시각적으로 단순하고 간결해졌는데,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변화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글쓰기 매체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지는 아직 논란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디어 이용 시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아동의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하며 상호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동은 자기 위주의 일방적인 소통만 상대에게 강요하면서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자녀가 미디어 중독이 되지 않도록 미리 미디어 규칙을 정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중/삼중언어 환경에 있는 아동 중 언어발달 지연과 함께 미디어 중독 증세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송나라 때 문인이자 정치가인 구양수는 어찌하면 글을 잘 쓰느냐는 물음에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이라고 하여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후대에 전해지면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으로 그 의미가 조금 변화한다. 결론은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고, 생각도 많이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0세에서 6세까지의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듣게 하는 것이다. 많이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 소통을 전제로 한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차원의 이색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아이 스스로 그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타고나는 것이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습작과 훈련에 의해 단련되고 발전한다고 말한다. 양쪽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대화, 토론, 상호 소통을 추가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