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주 지음, 예담
율곡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입니다.
율곡의 삶은 신사임당의 이야기와 함께 누구나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그런 '편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오랜 좌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낸이후 스스로 평생 삶의 좌표로 삼고자 쓴 [자경문]을 뼈대로 하여 그의 삶속에서 사람의 좌표로 삶았던 [자경문]이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곡의 [자경문]과 그 것을 실천하기 위한 율곡의 삶은 우리의 '편견'을 넘어 우리가 알지 못한 율곡을 알게하였고 방향을 읽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책은 율곡의 자경문을 입지(立志), 치언(治言), 정심(定心), 근독(謹獨), 공부(工夫), 진성(盡誠), 정의(正義)의 7장으로 구분하여 그 내용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율곡의 노력을 들려준다.
1장 입지(立志)
23p 입지 즉 뜻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중심이 확고하게 서야 한다. 그래서 학문을 가장 중시했던 성인들조차 '배우기 전에 먼저 그 뜻을 세우라.'고 한 것이다. 특히 작고 단기적인 뜻이 아닌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인 뜻을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분들이 많은 사례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명확한 목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기록했을때와 명확한 목표 없었을때 차이는 누구나 아는것과 같이 명확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것같습니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를 하나의 스포츠라고 하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것과 없는것의 차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곡은 성인을 본보기 삼아서 성인에 미치는것을 평생의 뜻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를 만나고 세운 뜻을 바르게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타고난 외모, 성별, 목소리는 바꿀수 없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것중에 어느것하나 사람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바꿀 있는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자기자신의 마음과 뜻입니다.
이 마음과 뜻을 바르게 세워(입지), 이것을 바르게 실천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원리를 지키지 않고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길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이 말을 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기때문입니다.
대부분 "뜻을 세웠다(입지)"말하지만 이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어떤 효과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이 단순한 원리가 바르게 적용되기 어려운것입니다.
2장 치언(治言)
[ 진리의 내용은 행동에 있지 말에 있지 않다.]
[현명한 사람의 입은 마음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입 안에 있다]
라는말과 같이 행동이나 실천이 없는 말은 의미가 없이 공허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시 말을 다스려 말하는 것을 삼가하고 두려워 하여 말을 줄이고 말한 것은 꼭 실천하여 말과 행동이 서로 같게 해야 합니다.
3장 정심(定心)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속에 온간 잡념이 떠돌면 어떤 공부도 어렵습니다.
결국 뜻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머리속에 담긴 잡념을 다스려 마음을 안정시키는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4장 근독(謹獨)
스스로 살피고 또 살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 보거나 혼자 있거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것 이것이 근독이라고 생각합니다.
5장 공부(工夫)
공부는 배우고 또 배우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평생을 배워야 합니다.
다만 등불이 비록 밝다고 할지라도 사물을 정확하게 비출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이를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배운다는것은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담는것이 아니라 배운것을 몸으로 실천하는것까지 포함됩니다.
여기서 좋은 독서의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중용]에 보면 독서를 하는 5가지 방법이 나옵니다.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이 그것입니다.
박학(博學)은 두루 혹은 널리 배운다는 의미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문(審問)은 자세히 묻는다는 것으로 한권의 책을 여러번 깊이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신사(愼思)는 신중하게 생각하는것으로 내가 읽은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유한다는 것입니다.
명변(明辯)은 명확하게 분별한다는 것으로 내가 읽은 책을 명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독행(篤行)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한것과 같이 배운다는 것은 머리속에 단순한 지식을 담는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즉 독서를 할때 가만히 앉아 글자만 읽거나 그 안에 담긴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천하는 것 모두 독서에 해당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독서에 대한 생각일수도 있지만 가장 바른 독서의 방법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6장 진성(盡誠)
모든 일과 사람에게 성의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사람은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행동을 통해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일을 대할때도 사람을 대할때도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성의를 다하는것, 그것이 가장 바른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7장 정의(正義)
세운 뜻이 높고 공부가 깊더라도 그 모든것이 바르지 않다면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고 실천하는 모든것에 항시 이것이 바른 길인가 하는 자문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의로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온전하지 않기때문에 길을 가다가 잘 못 된 길로 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때 그 길이 바른길이 아님을 알고 다시 바른 길로 돌아 올 수 있는것은 항시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혹시 빨리가려는 사사로운 욕심에 길이 아닌곳을 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사사로운 욕심을 절제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바른길이 아님에도 앞서 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그 길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바른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변화를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바른 길을 가는 어진 사람들과 같이 간다면 더욱 바르게 멀리 갈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사는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요?
이 책을 읽으며 사람답게 산다는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어떻게 사는것이 잘 살것인가하는 질문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 것같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사람이니 [어떻게 사는것이 잘 사는것일까?] 하는 질문은 결국 [사람답게 사는것이 무엇일까?] 하는것과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도 맺음말에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것은 사람답게 산다는것은 가장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곡과 같이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우지는 않더라도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겠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와 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입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실천과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것과 그 일을 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하는 행위는 전혀다른것입니다.
저는 사람답게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것은 실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포기 하지 않는 끊임없는 노력, 변칙을 용인하지 않는 가장 상식적인 바른 노력이 우리가 사람답게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