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해냄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당쟁'입니다.
좋은 의미는 아니죠.
서로 무리를 지어 입으로는 이상을 떠들고 명분을 찾으면서 행동으로는 상대 무리를 공격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그동안 지켜본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괜찮은 사람도 등장하지만 그들도 무리 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탕 속 개싸움) 속에서 속절없이 사라지거나 똑같은 변하는 것도 '당쟁'의 모습과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말이 제가 이 책을 읽는 생각과 비슷합니다.
- 현대 한국 사회의 분열주의적 경향의 뿌리를 조선 시대, 그것도 선조 시대, 그중에서도 송익필이라고 하는 한 인물을 통해 캐보고 싶었다고, 분열주의의 뿌리를 정확히 파악할 때 진정한 통합주의로 가는 길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사명감과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책의 내용은 송익필이라는 천재성을 가졌으나 불우한 환경을 가진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이이, 성혼, 정철 등이 자신의 생각을 실천해 가는 과정을 다양한 사료에 입각해 소설처럼 서술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료를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어 완전히 픽션의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고 요소요소 개인의 감정 등은 작가의 합리적 상상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가가 언급한 바와 같이 준 픽션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내용 전반을 읽고 저는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그때 당쟁의 중심에 서 있던 그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기 그들이 매번 입에 달고 살던 [왕]이 현대에서 [국민]으로 바뀐 것 외는 무엇하나 그때 사람들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문제적 인물 송익필이 대한민국의 분열주의적 경향의 뿌리일까?
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중후기 300년을 이어지는 당쟁의 역사의 뿌리는 송익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분열주의적 경향은 송익필에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당쟁의 역사는 결국 군주제 국가에서 일반 백성들과는 별개로 진행된 군주와 사대부 양반 간의 문제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군주제 국가였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자유를 누려 본 지 이 땅의 백성들이 자유라는 것을 누려본지가 이제 겨우 반백년을 조금 넘겼습니다.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생각한 조선시대 당쟁과 현대 대한민국의 분열주의적 경향의 뿌리는 강한 자기 확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지식을 얻으면 자기 확신을 가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겨우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지 반백년이 되지 않은 시간은 우리에서 토론과 비판에 필요한 성숙한 문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얻으며 단기간에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토론과 비판의 성숙된 문화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조선시대보다 못한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가 우리 눈앞에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보고 아무리 논리에 합당한 말을 해도 적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는 것을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적으며 떠올려 봅니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자기 확신에서 자유로운가?
아닙니다.
지금 이글조차도 논리에 맞지 않은 한 줌의 생각을 자기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기 확신이 편을 가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은다면 문제 될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글을 정리했습니다.
누구를 욕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지 돌아보는 연말이 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