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_007_논어와 주판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노만수 옮김

by 주종문

시부사와 에이치, '일본 경제의 아버지', '일본 금융의 왕',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최고 영도자', '일본 현대 문명의 창시자' 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최초의'라는 단어가 붙은 수많은 사업을 열어 근 500여 개의 기업 설립에 관여를 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신념대로 600여 개의 공익단체를 주도하는 등의 활동으로 1926년, 1927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시부사와 에이치를 그의 저서 [Management](1974)에서 "시부사와 에이치는 누구보다 먼저 경영의 본질이 책임과 신뢰란 것을 꿰뚫어 보았다"며, 기업의 목적이 부의 창출일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라는 것을 사부사와 에이치에게서도 배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시부사와 에이치의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 [논어와 주판]입니다.


[논어와 주판]에 담겨 있는 내용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실천이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 시대 고위 관료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실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 이야기한다면 호조참판(종 2품) 정도의 벼슬을 하던 사대부가 갑자기 벼슬을 버리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사회에서 가장 천하게 여겨지던 상인이 된 것과 같습니다.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 가지는 의미는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논어와 주판]에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그가 직접 실천했다는데서 큰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실천의 처음이 근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유교적 관념의 신분제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고위 관료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실업인의 길을 걸으면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주류사회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유교의 핵심 경전인 '논어'를 통해 기업(상업)이 단순한 이익 추구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도덕과 경제의 통일'을 주장하며 평생을 실천하였습니다.


[ 유학자들이 지금까지 공자의 학설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귀 관념'과 '화식(貨殖) 사상'입니다. 그들이 [논어]를 해석한 바에 따르면 인의 왕도(仁義王道)와 화식 부귀(貨殖富貴)는 서로 물과 불처럼 절대 어울리지 못하는 상극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공자가 "부귀한 자는 인의 왕도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반드시 부귀의 염을 버려라"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어]20편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그런 뜻의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지요. 아니 오히려 부귀와 화식에 대해 그러한 논단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

[논어와 주판]에 나온 이 글이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난 글이며 논어에 대한 바른 이해인 것 같습니다.

[논어와 주판]에서 [논어]는 의(義)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고 주판은 이(利) 즉 기업의 이익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부는 정당한 활동으로 얻어지는 거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의 전반은 아무래도 여러 강연의 내용을 모은 것이라 반복적이며 중복된 것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라면 작가의 역량을 의심해야 할 수준의 책일 것 같습니다.

다만 평생을 통해 스스로 다잡고 고심하여 실천하여 말보다 행동과 결과를 보여준 사람의 글이기에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자는 말했다. "부(富)가 구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말채찍을 잡는 자의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지만, 억지로 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 논어 7편 술이 [11장]


공자는 말했다.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지내더라도 즐거움이 진실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를 누린다는 것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 - 논어 7편 술이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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