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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Oct 14. 2022

미니멀 라이프, 시간이 많아진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 시간이 여유로워진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18킬로짜리 풍산개와 풍산개가 들어가서 누울 하드 캐리어, 한 달간 나의 짐이 들어간 캐리어, 엄마의 캐리어, 보조가방 정도를 우리의 SUV에 싣고 제주까지 왔다. 최소한의 짐만 가져오자고 하며, 정말 필요한 것들만 넣었다. 옷도 서너 벌 정도만 가져왔고, 수건도 몇 개로 계속 세탁해서 사용한다. 

 운동할 매트도 짐이 될까 가져오지 않았는데, 이건 가장 후회된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매트는 꼭 챙겨 왔었어야 했다. 그런데 덕분에 운동을 덜 하고, 강제 산책도 덜하며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적어지니,

덜 먹게 되고, 먹고 치우는 일도 적어지니 시간이 여유롭다. 옷도 없어서 뭘 입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추워지면 입을 옷이 없는데, 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은 날씨가 계속 따뜻할 듯하다.


 예전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등 쇼핑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어느 옷이 예쁜지 구경하고, 나에게 어울릴지 고민하고, 살까 말까 고민하고 또 생각하느라 시간을 참도 많이 썼다.

그날 먹을 것은 그날 고민하고 사도 충분한데, 새벽 배송을 시킬지 말지 고민하고, 새벽 배송 쿠폰을 써야 하는데 생각하며, 무료 배송 금액에 맞추느라 필요 이상으로 장을 보고, 쟁여두고 나서는 '이걸 언제 다 먹지???' 고민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도 많이 낭비했다.

돌아오는 계절에 입을 옷과 내일 먹을 음식에 대한 생각은 제발 이제 그만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최소한만 지니고 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중이다.


읽을 책도 딱 한권만 가져왔는데, 유튜브로 내용을 듣다가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주문했다.

연휴가 끼어서 그런지 3일 정도면 도착한다고 했던 배송이 일주일이 걸렸다.

일주일은 동생네 가족이 제주에 와서 같이 보내느라 시간이 빨리 갔지만, 조카와 보내지 않았다면 도서관에 매일 출근했을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파파 밥을 해주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시간이 여유로우니 파파에게 영양식을 해주고 있다.

물론 엄마의 도움으로! 당근과 표고버섯을 넣어 지은 밥에 달걀과 방울토마토 볶음을 얹어서 주기도 하고,

한살림 저염 햄을 소량 삶아 짠기를 빼고 삶은 달걀, 오이와 찹쌀 현미밥을 섞어 먹이기도 한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앞으로도 건강하게 직접 음식을 해 줄 것이라고 다짐 중이다.



 물건들이 부족하지만 괜찮다.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요가매트가 이렇게 감사한 거였나 생각한다. 사두고 읽지도 않은 수많은 책들과 언제든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오히려 너무 넘쳐나서 한 권에 깊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좋은 책 한 권에는 저자의 수많은 경험과 고뇌가 들어있는데 읽고 싶은 책도, 읽을 수 있는 책도 정말 많았지만 깊이 있게 파고 들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이 없음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 주변에 있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곳 제주에서 느끼고 돌아가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맛있는 건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오히려 배가 고프지 않아 못 먹었던 일상. 넘쳐나는 옷들을 보며 한숨짓던, 마음에 들게 정리도 되지 않던 그때.

요가 매트가 너무 많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신상 매트에 눈이 가고,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다음 책은 어떤 것을 읽을지 미리 생각하느라 집중에 방해가 됐던 일상들.


그다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머물지 못함을 의미한다. 더 적게 지닐수록 더 온전히 그 순간에 머물 수 있다.


많은 물건들에 쌓여 있을 때는 그것들을 보고 정리하느라, 정작 더 중요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할 에너지를 물건들에 쓰고 있을 수 있다.

더 중요한 본질에 마음을 둘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들에 얼마나 많이 둘러싸여 지냈는지 생각하면, 캐리어 하나만 정리하면 되는 지금이 더 좋은 점도 있다.



 여유있게 나의 삶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니 뭔가 다르게 보이는 점도 있다. 높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미로의 출구가 보이듯이, 미로 속에 있을 때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도 여행은 필요한 것 같다.



 이 한 달을 나의 삶 전체로 확대해 본다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온다.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쌓아두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반복되는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제주에서의 교훈이 오래 남기를 바란다.


 깊이 있게 책 한 권을 읽고, 하늘 멍 바다 멍 때리기를 하면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일상에서 또다시 감사함이 흐려지고, 결핍감이 느껴질 때쯤 다시 최소한의 채비로 어디론가 가리라 생각한다.












#제주한달살이 #제주여행 #제주살이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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