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행동하는 사랑이며, 지혜는 가르치는 사랑이고, 자비는 용서하는 사랑이며, 정의는 다스리는 사랑이라고도 하셨다.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건 맞는데, 모든 걸 다 사랑하기엔 나는 너무 부족하다.
'Love is the anwer.'인데, 어디까지 사랑해야 하는 건지 가끔 헷갈리고, 그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할 수밖에 없다.
3년 전 잠깐 레슨 했던 회원님께 갑자기 연락이 왔다. 당시 허리가 매우 아프셔서 가벼운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시던 분이셨다.
그분은 레슨을 받으며 많이 감사했는데, 그때 제대로 감사를 전하지 못하셨다며, 허리가 많이 좋아지신 지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3년 만에 조금 뜬금없긴 했지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말씀에 기쁘게 차 한잔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나간 자리에서, 그분의 근황부터 전(前) 직업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며, 3년 전 레슨 받을 때 내가 사랑이 많다고 느끼셨다고 감사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의 내가 사실을 사랑이 부족한 상태였다며,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내 말에 이어 화제를 자연스럽게 다단계 암*이 이야기로 전환하며, 그 회사 제품인 철분제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갔다. 계속되는 철분제 이야기에 점점 나의 표정은 굳어졌다. '감사의 인사를 한다고 만나자는 것이, 사실은 다단계 회사의 이야기를 하러 보자고 한 것 인가?'라는 생각에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나의 표정을 읽은 그분이, "쌤, 제 이야기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분은 나에게 "사랑으로 살기로 했다면서요?"라고 말했다.
나는 재빠르게 대답을 못하고 늘 한 박자 느리다. 뒤돌아 오면서 답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사랑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거나 다 받아줘야 한단 말인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로 알고 나갔는데, 갑자기 다단계 회사의 홍보자리가 된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라고?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자고 상황을 넘겼고,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좋지 못한 마음은 아니었다.
감사를 위장한 홍보가 불편했던 것이고, 난 그 상황을 여유롭게 대처할 만한 크기가 못됐다.
어떻게 현명하게 웃으며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봤지만, 나에겐 반갑지 않은 것을숨길만한 가면이 없다.
인간관계는 바라는 것이 없고, 다만 사랑하는 마음만 있을 때 깊어질 수 있다.
얼마 전, 조카를 만났다. 조카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나도 조카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웃고 떠들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뿐이다.
조카와 있으면 나도 아이가 된다.
손 잡고 생각 없이 뛴다. 가상의 괴물이 쫓아온다고 뛰고, 장애물이 있다며 지그재그로 뛴다.
몇 십분 뛰었는데, 하루치 운동을 하고도 남는 운동량이다.
게다가 작은 것으로 깔깔대고 웃고, 사랑 표현도 아주 솔직하게 한다.
에너지장이 바뀌는 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 사랑둥이❤️
이모는 조카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솔직하게, 아무렇지 않게 사랑표현을 한다.
"도현아, 오늘 이모는 도현이 만나서 마음이 청소가 됐어. 도현이가 이모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 줬어."
마음 안에 좋은 것만 들어있는 조카는, 청소할 갓도 없으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이모도 내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 줬어."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 이모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사랑만 가득한 아이, 얼마 전 연애편지를 받았다고 동생이 몰래 말해줬다.
사람은 아이나, 어른이나 사랑이 많은 사람에게로 끌린다.
조카에게 사랑고백을 했던 아이의 뜨거운 연애편지를 읽으며, 내 조카의 가득한 사랑을 보았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