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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Feb 08. 2022

작은 그릇에 넘치는 행운이 주는 부작용



  그릇은 작은데, 위에서 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작은 그릇은 넘치도록 물을 담고 싶지만 담을 수가 없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큰 은혜를 입고 자랐다.

인격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면에서 풍요롭던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어릴 적부터 손주들에게 용돈을 아주 넉넉하게 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때도 할아버지 댁에 가기만 하면 몇만 원씩 용돈을 받았고,

세뱃돈은 몇십 만원씩 받아서 설날에 받은 돈으로 초등학생 시절 내 맘대로 강아지를 사기도 했었다.


 문구류는 넘쳐나는데 또 사고 또 사고, 군것질은 매일 했다.

돈을 다루는 법을 전혀 모르던 나에게 넘쳐나는 돈은 오히려 독이 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갖고 싶은 건 대부분 샀고, 그나마 빚을 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러모로 할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아,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늘 따뜻하지만 내가 지금껏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잡아주는 물고기만 잘 받아먹어 서라는 걸 조금 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 또한 부유한 집 외동딸로 할아버지의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셨는데, 엄마의 큰 사랑은 내가 필요한 많은 것을 사주고 마련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부족함은 모르고 자랐고, 내가 가장 부유했다고 체감했을 때는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고, 그다음은 중학교 그다음은 고등학교 이런 식으로 부에 대한 체감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ㅋㅋㅋ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형석의 인생 문답>에서 교수님께서는 재산의 정도가 인격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부자들은 돈에도 감정이 있고 인격이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나는 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작은 돈도 매우 소중히 다루어야 함을 깨닫고 있으니, 수준에 맞지 않는 풍요로움이란 그저 잠시 흘러가는 구름일 뿐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낀다.


 아무리 많은 유산을 상속받아도 돈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유산이 없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복권에 당첨된 사람 또한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듣고 보아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수준과 인격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풍요롭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유치원생이 6학년 옷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1학년 과정이 잘 끝나면 자연스레 2학년이 되듯, 우리가 성장하면 그만큼의 더 큰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내가 지금 보다 더 부족했을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둘 기회가 있어도 그 기회를 놓쳤었다. 같은 에너지, 같은 수준끼리 어울리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높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는 어려웠던 같다.



 많은 책에서 내면이 바뀌어야 환경이 바뀐다고 한 말은 틀림이 없다.

황금을 모르는 아이에게 금덩이를 주어봤자 돌덩이와 구분을 못하니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고,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사람이 많은 돈을 벌아 봤자 그 돈은 이기적인 용도나 탐욕을 위해서 쓰일 뿐이니 그것 또한 엄청난 독이 된다.


 나는 요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시간 생각을 하며 보내고 있다.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고생이 행복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나도 사랑으로 하는 수고를 조금씩은 더 해보려고 한다.


 가장 본질적인 것부터 채워가고, 

나이가 들 수록 아름다운 그릇으로 커져가길 기도하며.











( 제목은 책 우연 접속자 p.9 이나미 교수님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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