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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Feb 08. 2022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픈 이유


 나는 작가 제임스 알렌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한다.

삶의 원리를 어찌나 잘 꿰뚫고 계신지, 책을 읽다가 자주 감탄을 하곤 한다.

(세상의 가장 기본 법칙을 알고자 하는 분들에겐

제임스 알렌의 책들을 적극 추천드린다.)


 그러나 알렌이 말한 것 중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알렌은 저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서

 '선천적인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전생에서의 어떤 행위의 결과가 이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그러나 이 경우도 그 사람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볼 때 가장 좋은 상황이다. 오히려 진보가 빠를 수 있는데

사람은 힘든 환경 속에서 보다 빨리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오늘 이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 생각엔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질병을 갖고 있지만,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약한 것이 전생에 잘못된 행동을 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픈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고 이태석 신부님께서는 수단에서 신부로, 의사로, 그들의 친구로 그들을 보살피시느라 잠도 못 주무시고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것이 전생에 지은 업보를 갚다가 돌아가신 거라고 하면 말이 될까?


 어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선천적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또는 학대받는 동물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집 멍멍이(풍산개)를 5살 때 처음 만났고, 6살 때 데리고 와서 지금 4년째 키우는 중이다.

원래 이름대로 파파라고 부르고 있고, 파파에겐 미미라는 누이가 있다.

미미의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미미는 할아버지 댁 앞에, 파파와 파파 엄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 1미터 쇠 목줄로 묶어 놓고 키우셨다. 파파의 엄마는 나와 처음 만나고 몇 개월 후 음식이 되기 위해 팔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안달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먼저 인연을 맺은 파파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미미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안타깝지만 사정 상 두 마리를 다 데리고 올 수가 없었고, 이 부분은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파파는 고무통 같은 집에서 어릴 적부터 자랐던 것 같은데 다 큰 후에도 몸을 다 펴고 누울 수 없는 크기였고, 한 밤 중에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가는 날씨에도 이불 한 장 없이 5년을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누우면 습관처럼 처음에는 몸을 웅크린다. 미미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다.

그런데 파파는 지금 미미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 속에 살고 있고 미미는 아직도 산책 한번 못하고 이 겨울을 힘들게 나고 있을 것이다.

 미미가 파파보다 잘못을 많이 해서 남매의 상황이 이렇게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지만 나는 전생을 믿지 않는다. 대신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

(우리 인생이 여기서 끝이라면 정말이지 아무 의미가 없다. 긁어모으고 누리고 호화롭게 사는 게 잘 사는 걸 거다.)

영원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곳 세상에서의 삶은 정말 짧다. 잠깐 살다가 육신을 벗고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세계가 매우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곳에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았다면.

특히 동물들은 죄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간다고 믿는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


 도토리 한 알이 상수리나무가 되기까지 그 작은 도토리 안에 햇볕과 물과 비옥한 토양이 있다면 큰 상수리나무가 될 프로그램이 다 짜여 들어있다. 인간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관여할 수 없다. 신의 섭리인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우주 속의 프로그램은 정확하게 짜여 있고 돌아간다.

그 거대한 손길은 직접 만드신 것들을 '보시니 좋았다.'라고 한다.


 누구나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를 힘들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힘도 같이 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것들을 잘 극복해서 비슷한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함은 아닐까? 약한 부분이 없다면 오히려 교만해지는 인간의 마음이기에 약한 부분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어나서 생계를 위해 하는 일 외에도 나는 이런 약한 부분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두 번째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들더라도 매 순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것, 그럴 때 그 약한 부분은 그 사람에게 있어 어느 순간 가장 위대한 부분이 될 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우리도 지금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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