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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May 05. 2022

인스타의 '좋아요'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야.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돈을 주고 홍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름대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유튜브 같은 것들로 스튜디오의 존재를 알렸다.

인스타그램용 사진이나 운동 영상을 찍으려면 일단 복근이 11자로 보이면 좋고, 운동 목적이 다어이트가 제일 많으니까 나는 무조건 날씬한 모습 이어야 했다. 

사진은 공복일 때 찍고, 배에는 힘을 줘서 복근이 보이게 한다. 

유튜브 영상을 찍으려면 짧게는 몇십 분에서 몇 시간씩 걸리는데, 나는 날씬한 상태여야 하니 영상을 찍기 전부터 배가 고프고 찍으면서는 배고픈 걸 모르다가 찍고 나면 너무 배가 고팠다.

그러면 영상을 찍고 나서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먹거나 고칼로리 음식을 먹게 되고, 좀 전에 있었던 복근은 어디로 갔는지, 같은 사람의 배가 맞는지 싶었다. 

 그렇게 내 모습 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아 보이는 사진이나 영상을 고르고 편집해 올리고, 잘 나온 사진일수록 당연히 '좋아요'가 많다. 하지만 영상을 올리는 시점에서 나의 배는 통통하니 나는 그 좋아요를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ㅎㅎㅎㅎㅎ

 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배가 나와서, 밥을 많이 먹어서, 오늘은 뚱뚱해 보여서 못 찍은 날도 많다.



이미지 출처 pixabay  @sharijo




  오늘 아침에도 파파를 산책시키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던 견주 한분이 '개X을 어쩌고~'라고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몇 걸음 더 걸어가 보니 길에 누군가 배변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갔길래 내가 치웠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산책하다 종종 다른 강아지의 응가를 치우곤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우리 파파가 다른 강아지의 응가를 된통 밟은 적이 있는데 치우고 닦아도 냄새를 없애는데 수십 분이 걸렸다. 발을 몇 번씩이나 닦이고 계단청소에 현관 청소에 엄마랑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누군가 밟을까 봐 치우기도 하고, 나도 예전에 깜빡하고 휴지와 비닐을 안 챙겨가서 못 치웠던 적도 있고, 좋은 일 하면 내가 복 받는 거니까 등등의 이유가 있다.


 어쨌든 반대편 견주분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산책길에 있던 응가를 치우고 나서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분이 내가 치우는 모습을 보셨는지 "아까 내가 다 고마웠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개들 배변은 못 치우겠던데, 젊은 사람이 참 괜찮다."라고 하셨다. 물론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왜 나고? 

 그분은 나의 한 가지 행동만을 보고 말씀하신 것이고 나에게는 나만 알고 있는 단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어떨 때는 틀리기도 하다. 만약에 내가 비닐과 휴지를 깜빡하고 안 가져가서 파파의 뒷정리를 못하고 도망치듯 오는 것을 봤다면 '젊은 사람이 개념이 없다.'라고 욕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빌려서라도, 비닐과 휴지 사서 되돌아가서라도 치우고 옵니다.)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해서 내가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나를 잘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의 칭찬에 대해 크게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일이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oo가 어제 지나가는 길에 너를 봤는데, 옷 못 입는다고 하더라."라고 말해서 매우 기분이 나빴던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왜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스스로 내가 옷을 못 입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기분 나쁠 일이 아니었을 테고, 또 다른 이유는 옷을 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어떤 감정이나 나의 소유물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에서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나의 옷이나 소지품에 대해 예쁘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예쁜 게 아니라 옷이 예쁜 거고, 내가 옷을 갈아입으면....?

우리는 물질적인 어떤 것도 없는 상태의 '본연의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조차도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들이므로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으면 더 자유로운 상태로 지낼 수 있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을 구하는 일이 훨씬 적어졌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는 아주 조금 더 의연해졌고, 비판에 의연해지려면 아직 먼 것 같다. 타인의 비판에 의연해지려면 내가 나 스스로의 가치를 가득 차게 인정하거나, 노자께서 말씀하셨던 텅 빈 무(無)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 단계는 아직 멀고 먼 것이다. 



 감사할 것은, 성장하고자 하면 우주는 우리를 정확하게 도와준다. 우주의 근원은 늘 우리를 살피고 있으며, 한치의 실수가 없다. 고도의 정확한 측정값으로 한 단계씩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그 단계에 맞는 지식과 지혜가 나에게 다가옴을 '항상' 느끼면서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면 우주의 근원은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를 돕는다.

목표, 믿음, 노력 이 세 가지가 함께 할 때 우리는 깨어난 상태로 나아가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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