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진 May 05. 2022

사랑받으려고 사랑하지 마.



 삶의 지혜라곤 거의 없던 학창 시절,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어떤 여자가 한 남자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서 남자가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성공하고 나니 그 여자를 떠났다더라.' 혹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더라.'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그때는 '남자가 참 이기적이네. 어떻게 자신을 위해 헌신한 여자를 떠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생각은?  '여자가 안됐지만,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이다.

왜냐고? 그 남자는 도우미 이모님을 원한 게 아니고, 매력적인 애인을 원했던 것이니까.


그러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을 하려면, 그 사람이 나의 모든 헌신을 다 받고도 떠나가도 괜찮을 만큼만 헌신하면 된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당신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사랑을 더 받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감정은 에너지장으로 통해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에게 원함이 없이 잘해주는지,

무언가를 원해서 잘 대해주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를 원한다고 생각될 경우 진심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원함이 없이 적절한 수준에서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은 서로 간의 거리를 확보한다는 의미이며, 그럼으로써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서로 존중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기 위해서라고 힐 때, 두 가지 상황이 가능하다.

 첫 번째 상황은 그 사람에게 해주는 모든 것이 되돌려 받기 위한 것이므로,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이나 어떤 것을 해주지 않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나게 된다.  

 두 번째 상황은 상대방에게 사랑받기 위해 내 뜻과는 다를지라고 상대방의 뜻에 무조건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계가 있으며, 결국 상대는 자신의 뜻에 무조건 맞추려고 하는 당신을 통제하려고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진정한 관계 맺음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사랑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윗사람일 경우 쉽게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네가 내 말을 들어야 나를 사랑하는 거야.'로 상대방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휘두르려고까지 할 수 있으며 결국은 상대방을 자신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자유를 제한하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제임스 레드필드는 '천상의 예언'에서 다섯 살 이상만 되어도 아이 앞에서 어른들끼리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아이와 대화하라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끼어들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는 이것 또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원함이 없는 행위는 신과의 관계에서도 통하는 원리인데, 우리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신에게 원함이 없이 감사할 때 신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주신다.

매일 달라고만 떼를 쓰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핍감의 상태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말도 한다.

누군가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되돌려 받을 생각일랑 하지 말고 줄 수 있는 만큼만 그냥 주라고.

나에게 돈이 있어서, 사랑이 있어서 줄 수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을 줄 때는 되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적정 수준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성인(聖人)이 아니니까.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은 성인이다.

이탈리아 사제로 서른세 살이던 1990년에 한국으로 와서 30년째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계시는 김하종(느님의 ) 신부님 같은 분들을 두고 원함이 없이 베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신에게 받는 사랑으로 넘쳐나기 때문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생의 마지막 날에 신에게 가고 싶은 원함이 있어서 봉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게 아니면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헌신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미약한 생각이다.


 반면 헌신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물질적인 것들이나 현실적 도움이 감사하고 필요하긴 해도, 우리 모두는 사실 정신적인 성장과 사랑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고 성공하고 싶은 것이 인간 본연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무언가 하고 싶을 때, 혼자서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상태에서 타인과 그것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간다고 하면, 혼자서도 당신은 여행을 갈 수 있고 혼자 여행을 가도 좋을 때, 그때라야 누군가와 함께 가도 좋을 수 있다. 혼자서 여행은 못 가고 누군가와 같이 가야만 갈 수 있는 여행이라면, 그것은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의존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그만큼 희생해야 함을 뜻한다.

(상대방이 그것을 충분히 감안하거나,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면 괜찮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결혼도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때, 혼자서도 외롭다는 생각보다 기쁘고 재밌는 상태일 때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나보다.

모순 같지만 혼자서도 즐거운 사람은 매력적이어서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결국 이래도 저래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가 필요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더 외로워진다.


당신이 사랑받고자 하는 그 사람 또한 인간이기에 사랑이 늘 충분한 상태가 아니다. 부족한 곳에서 무언가를 찾으니 당신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얻어야 한다. 그곳에서 사랑을 충전해와야 한다.


 그러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이대로 충분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다음에야 당신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든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인 것이 두렵다는 것이며, 두렵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꼈지만,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 인간과 세상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내면을 살피면서 단단해지고 있다.

나는 항상 신이 보살펴주시고 있다고 믿기에 남들보다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이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이 없던 어린 시절 나는 무척이나 외롭다고 느꼈고 늘 공허했다.

어떤 결핍감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면, 상대방은 소유하려는 에너지를 느껴 질식하게 되고 점점 멀어지게 되고 마찬가지로 결핍감으로 돈을 좇으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듯하다.

결핍감의 상태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후회가 많아진다.


어떤 사람은 신을 믿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어 괜찮다고 하는 경우를 봤다. 불교에서는 신이 없다고 한다.

방법은 다양한 것 같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만드는 방법은 모두 다 다르니까.


나는 여러 책을 통해, 그리고 명상과 기도를 통해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 자신과 신에 대해 더 알게 될수록 덜 외롭고 조금 더 편안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건 진심으로 재밌다. 원래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알아가는 건 즐거운 거니까.

혼자 있는 시간도 매우 좋다.



 당신도 사랑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을 하나씩 해보기 바란다. 그게 무엇이든.








#내면탐구 #사랑에성공하는법 #매력적인사람 #자기사랑 #두려움극복 #명상의효과 #끌어당김의법칙

작가의 이전글 새빨간 티(tea) 모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