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감이 귀여운 벌레에 관해.
혼자 지내다 보면 집에서 별로 놀랄 일이 없다. 특히 휴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컴퓨터를 다 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오래간만에 놀랐다. 돌돌 말린 이불 옆 쿠션에 미지의 생물체가 있었다. 오늘 저녁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들어온 후 나는 누군가와 계속 동거하고 있던 것이다. 미동도 소리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바깥으로 옮기지?'였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 사체를 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문이나 현관문으로 그대로 내던져야 했다. 젓가락으로 집자니 그 감촉의 소름이 돋는 것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달리 집을 만한 도구도 없었다. 손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쿠션째로 들어서 이불 털듯 터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땅에 착지하자마자 무수하고 짧은 다리들로 다시 실내로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상상이 스쳤다. 꺼져가던 닭살이 다시금 돋았다. 나는 무슨 연고로 자정이 넘은 이 시각에 미물과 맞서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저 친구도 겁을 먹었을 테다. 많아야 1~2년 세상의 빛을 봤을 나이인데.
이런 상념에 몰입하는 것은 우리의 불편한 동거를 끝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나는 왜 환기를 시킨답시고 찬바람 솔솔 들어오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는가. 그리하여 왜 이 호기심 투성이인 작은 친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함께 살 수는 없는 운명. 너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나는 잠을 자야 했다. 그저께 이불 빨래를 한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쿠션에 살짝 손을 대보았지만 여전히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양손을 대보고 한쪽을 들어 올렸다. 오래된 물건이라 솜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거나 땅에 닿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 해진 팬티 한 장을 입고 나는 5평짜리 자취방에 멀거니 서 있었다. 그리마가 물끄러미 앉아 있는 쿠션을 들고서.
창문을 열면 방충망에 붙어 있는 모기를 비롯한 날벌레들이 들어올까 겁났다. 현관문을 열어도 다를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문을 늦게 닫기라도 한다면 아까 들었던 걱정처럼 바로 집으로 들어와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결국 아예 집 밖으로 갔다. 계속해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자세로 정지해있는 그리마가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이 친구도 겁을 먹었겠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생김새와 달리 그리마는 익충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혐오스럽다, 징그럽다 이런 감정들을 준 아주 좋은 예시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혹은 그리마를 보고 그런 감상을 만들었든.
갑자기 이 벌레가 불쌍해진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들어와서는 생사에 기로에 놓였을까. 내가 이 친구를 살해할 자격은 어디에 있는가. 이 생명도 세상에 나면서 나름의 고충과 임무를 품었을 것이다. 다른 그리마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함께 먹이를 사냥하는 동료들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을 게 분명했다.
사실 이 녀석에 대한 내 연민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매체나 신문 기사에서 그리마는 익충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다른 해충을 잡아먹는 것은 물론 알까지 모두 먹어 치운다. 게다가 겁도 많아서 사람도 무서워한단다. 어쩌면 가만히 있는 이유가 나를 무서워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에게 겁먹은 두 생명체가 방 한 칸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아주 가까이 서서 마주 보고 있다니.
지체할 새가 없었다. 내일 나는 일찍 학교를 가야 할 일이 있었고, 빨리 녀석을 처리하고 잠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동 현관문 옆에 달린 우체통 벽에 빨랫감을 털 듯 쿠션을 내리쳤다. 전등의 센서는 마음이 급해서, 불이 꺼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이 바닥에 철퍼덕 내려앉았고 거의 동시에 불이 꺼졌다.
나는 탈옥수처럼 현관 안으로 들어오고 재빨리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뒤처리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잘 들어는 갔을지, 혹시 떨어지는 충격으로 어딘가 다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날이 밝자마자 바깥에 나가봤다. 그 자리에도, 주변에도 그 녀석은 없었다. 아무 증거도 이유도 없이 나는 그가 집으로 잘 돌아갔다는 믿음이 들었다. 알면 사랑한다`라는 모 생물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낱 미물에게서 가르침을 얻어 가는 순간이었다. 생명은 왜 아름다운가. 우리는 왜 아름다운가. 중지만 한 작은 몸뚱어리의 동결된 모습이 이 아침, 나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