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부당 예산에 항의하다 봉변 당한 시민 7인의 분투기
지도자를 잘못 뽑아 나라가 엉망인데 파주시도 이 못지않다. 독자들도 그렇겠지만, 정치가 이렇게 개판인데 사회가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기분 나빠 계엄 한 번 때려봤다는 대통령을 둔 나라의 국민은 고단하고, 안하무인 지자체장을 둔 지자체의 시민은 고달프다.
부당하게 세워진 시 예산에 대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격앙된 표정으로 “정신 차려”라 고함치며 삿대질하는 시장의 광기에 노출되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찰나적 ‘멘붕’이 왔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의 함의는 시장이 자신의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정신 나간 ‘또라이’로 간주하고, 이런 막말을 퍼부어도 되는 소위 ‘개 돼지’ 취급을 했다는 것이렸다.
“정신 차려”의 진상은 이렇다. 파주시가 용주골 집결지 정비 예산에 집결지 건물 매입비로 38억을 편성한 반면, 집결지 종사자들에겐 받지도 못할 피해자 지원금만 3억 가량을 편성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 참고.https://brunch.co.kr/@jupra1/277 ) 이는 그간 파주시가 용주골을 닥치고 폐쇄시키면서 프로파간다한 <착취자(건물주, 업주) vs 피해자(종사자)>라는 이분법을 스스로 무너뜨린 자기부정의 소극이다.
파주시가 종사자들을 진정 ‘피해자’라고 간주했다면, 소위 ‘갱생’을 위해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했다. 하지만 김경일 시장은 종사자들의 현실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파주시 성매매 지원 단체인 쉬고와 손잡고 용주골을 쳤다. 용주골 종사자들을 만나온 적이 없는 쉬고를 통해 용주골 종사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의 ‘피해자’ 프레임은 어언 20여 년 전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의 피해의식 속에 갇혀 있다. 쇠창살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은 군산 성매매 여성들 말이다. 나는 참사로 죽은 고인들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20여 년 전 그곳 군산의 피해자 프레임으로는 이곳 용주골 종사자들의 구조적 피해를 전혀 해결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쉬고는 용주골 종사자들이 어떤 구조의 건물 어떤 방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사정으로 성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어떤 필요가 충족되어야 성 산업을 떠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용주골 여성들은 대명동의 그 방에 있지 않은데, 쉬고는 이들이 참상이 벌어진 그날 그 방에 있다고 우기고 있다.
종사자들을 접촉해 보지도 않은 쉬고는 매너리즘에 빠져 어떤 지자체나 똑같이 카피하는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를 ‘붙복’하고는 고작 한 달 100여만 원의 돈을 쥐여 주는 지원금(탈성매매 서약서를 쓰고 발각 시 지원받은 전액을 토해내야 한다)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렇게 잘해주는데 안 받는 종사자들이 이상하고 잘못된 ‘흠결 있는 피해자’라고 서슴지 않고 낙인찍고, 안 나가면 나가게 만들어 주겠다며 시민의 혈세를 투입해 벌인 짓이 집결지 건물 매입이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의 쓸모없는 건물을 건물주가 달라는 대로 시세의 두 배도 훌쩍 넘는 돈을 들여 사들였고, 내년에는 38억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당하고 부정의한 예산 편성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항의하는 게 “정신 차려”야 할 일인가.
“정신 차려”야 할 당사자는 김경일 시장과 실태조사 없이 시대착오적인 집결지 정책을 세운 공무원들, 부당한 예산에 가결 표를 던진 몰지각한 시의원들, 연봉 약 3700만 원에 길들여져 시장의 옆에서 거수기가 된 쉬고, 성매매 혐오가 곧 여성 혐오의 본질임을 은폐하고 집결지만 없애면 성매매가 사라진다는 미망에 사로잡혀 호가호위하는 시민단체 클리어링, 김경일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민주당 당파성에 붙들려 잘못하는 시정을 잘못하고 있다고 질타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과 시민들이다.
시민 혈세를 배부른 건물주에게 과잉 수혈해주는 부당한 예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시의원을 만나 건물 매입비 38억의 부당함을 알리고 설득했다. 연대 시민들은 이 나쁜 예산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의원들에게 호소 문자를 매일 보냈다. 이 과정에서 가정 폭력으로 집을 나와 묵을 곳도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한 여성이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현재는 자활 지원을 받고 있는 당사자로서 현 지원책의 한계와 어떤 지원책이 바람직할지를 조목조목 열거해 설득했다.
이 여성의 발언이야말로 성매매 지원책을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하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성매매 당사자의 목소리를 소거한 지원책은 이들을 시민으로 성장시키려는 ‘지원’이 아니라, 여전히 불쌍한 피해자에게 찔끔 건네는 ‘수혜’로만 설계되기에, 성매매 종사자를 구제할 수 없다.
연대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물 매입 예산이 통과되었다. 김경일 거수기가 부케인 파주시의회 이정은 예결산위위원장은 파주시가 편성한 예산의 결함을 지적해 보완한 수정안을 기각하고 김경일 원안 그대로 상정시켰고 본회의에 상정된 부조리한 예산은 가결되었다. 시민의 목소리가 깡그리 짓밟히는 폭거가 벌어진 파주시의회 본회의 방청을 마치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12월 18일 10시 40분경, 연대 시민 7인은 파주시의회 본회의 후 퇴장하는 시의원들과 김경일 시장에게 건물 매입비 38억과 피해자 지원금 3억(실행된 예산 1억) 가결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파주시의회 2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시민들을 스치며 호위하는 공무원들과 지나가던 김경일 시장이 시민들의 항의에 눈을 부라린 채 삿대질을 하며, “정신차려”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 무슨 패악질인가.
즉각 막말에 사과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김경일 시장은 공무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시민을 업신여기는 정치인의 패악질이 어디 한두 건이겠는가마는, 오냐오냐해 버르장머리가 나빠지는 아이처럼 정치가의 패악질도 그럴 테니,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시민들은 시의회를 나가 파주시청 시장실로 이동해 사과를 요구하기로 했다.
시장실에 이르자니 점입가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5명의 여성과 20대 여성 2명을 막기 위해 시청 공무원들이 총출동했다. 시장실로 들어가는 문은 이미 공무원과 청원경찰이 막고 겹겹의 방어벽을 세우고 있었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불법 체증하기 시작했다.
인간 방어벽의 면면을 보자니, 용주골 갈곡천 펜스를 철거하기 위해 지난 3.8 여성의 날에 기습을 주도한 파주읍장, 용주골 폐쇄를 밀어붙이고 있는 파주시 여성가족과 공무원들, 용주골 대집행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파주시 경찰과 형사들까지,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이 뒤섞인 수십 명의 무리들이 여성 시민 고작 7명을 압박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점입가경은 파주시 정책실장 김영수의 방약무인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시민 7인의 정체가 “건물주냐, 업주냐, 종사자냐”고 물었다. 그는 당사자가 아니어도 부정의를 지적하고 나서는 시민성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금과옥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전제주의의 탕아였다.
그는 덧붙여, “용주골은 불법이야 그러니까 당신들도 불법이야”라며 입에 붙은 익숙한 반말로 시민 항의에 마치 조폭 나부랭이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군림하는 공무원의 오만이 몸에 밴 너무나 태연한 권위주의 관료의 작태였다.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 저런 무도한 자가 파주시 정책을 맡고 있으니 이렇게 엉망진창이고, 시민을 ‘개 돼지’로 여기는 게 아닌가.
그의 여성 혐오 또한 전형적이었다. 아줌마 5명과 ‘어린’ 여성 2명이 뭘 하겠다고 이 소란이냐고 깔보는 속내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 항의하는 젊은 여성 시민에게 자기 아이들에게나 할법한 반말로 “가만있어 봐”라며 묵살했다. 가만있으라고? 가만있으라는 말로 생때같은 수백 명의 아이들을 수장시켜놓고 할 말인가.
게다 계엄 위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정치적 집단이 ‘탈정치화된 청년’이라 비하했던 2030 여성이라는 것을, 또한 용주골을 지키겠다고 오는 시민 대부분도 2030여성이라는 것을, 김영수 같은 타락한 공복이 알 턱이 없다. 관료화된 공무원의 메마른 사고로는 전혀 다다를 수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그들이 있다. 김경일 시장이 시민들에게 던진 폭언을 돌려준다. “정신 차려.”
파주시 정책실장 김영수는 시민 7인에게 몇 시까지 있을 거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실소가 나왔다. 사과를 받아야 갈 게 아닌가. 물음의 이유는 시장이 나갈 시간에 시민들을 치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폭언에 사과하면 간다는 간단하고 상식적인 시민의 요구를 1시간가량 묵살하더니, 11시 40분경 시민들 주위를 더 압박해 한쪽 벽으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 김경일 시장이 나오더니 그 공간을 유유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출타를 위해 공무원 경찰할 것 없는 수십 명이 시민 7인을 꼼짝 못 하게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A는 김경일 호위무사들에게 양팔을 과격하게 잡혀 제압되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다. 힘없는 중년 여성 한 명을 장정 서너 명이 붙잡고 뭉갰다. 이게 파주시장 김경일과 공무원들이 벌이는 작태다.
나는 계엄과 탄핵 시국을 겪으며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탄핵 집회의 시민들은 놀라운 민주 의식을 보이지만 왜 거대담론에만 정의로운가. 가장 약한 계층을 짓밟는 지역의 반민주 반인권엔 왜 반대도 항의도 하지 않는가. 이 엉망인 정치 지형에 반헌법 반민주 행태를 보이는 국민의 힘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 수 없지만, 시계를 파주시로 좁혀 보면, 파주시 적폐 행정을 떠받치는 무리는 민주당이다. 김경일의 폭거는 너무나 유사하게 윤석열을 소환하는데, 그는 국힘이 아니고 ‘민주’당이다. 한심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소속 김경일 시장은 항의 시민 7인을 백 프로 공무집행방해죄로 걸어 넣을 것이다. 이미 그는 용주골 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여성을 경찰의 함정수사로 성매매 혐의로 벌금형을 받게 했고, 지금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게 하고 있다. 용주골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차차 활동가 역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당해 곧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미 나와 부상당한 A는 용주골을 드나드는 경찰의 요시찰 대상이었다. 이제 벌어질 일은 불 보듯 뻔하다. 파주시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을 공무집행방해죄 줄줄이 엮고 있다. 이것이 민주당 시장이 파주시에서 벌이는 반민주 폭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