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되고 싶나요?
들어가며,
코로나 시기부터일까요?
‘전문성’이라는 말이 유독 집착적으로 진로 목표라든지 커리어 지향을 설명하는 데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전에도 물론 전문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컸으나 회사원들이나 신입사원까지 ‘전문성’에 대해 신경 쓰고 욕망하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에자일, 프로젝트 단위의 업무 방식 같은 것들이 가속화되며 ’실력이 있는 자‘ 혹은 ’핵심인재’, ‘진짜’가 확인되는 일 또한 하나의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익숙하게 쓰는 단어를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사용한다고 믿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단어들은 해체해 보면서, 언어로 풀어보면서 명확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단순히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기엔 모자라고 모호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글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을 ’전문가‘라는 단어를 조직심리 혹은 산업심리 관점에서 풀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 읽고 날 때 즈음이면 “나는 전문가가 될 거다”라는 말에 힘을 실을 철학 혹은 태도 하나는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전문가란 무엇인가?
최근에 네이버에서 ’네이버 expert’ 라는 서비스를 런칭하며 전문가(expert)를 정의한 바가 있지요.
기본적으로는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와 같은 분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경우에는 자격증을 따거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이들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지 전문가의 전체 범주를 차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전문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 이 서비스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운세타로/심리], [학습/취업], [it/비즈니스], [라이프/취미] 같은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전문 직종보다도 우리가 전문가 하면 더 많이 떠올리는 정의는 ’한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 일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반복된 경험으로 자신이 해오던 일정한 방식의 일에 능숙한 ‘숙련가’이지 사실상 이들도 전문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조직심리 및 산업심리를 연구하고 있는 손영우 교수님은 전문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통찰력과 모험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자격을 따고, 전문지식이 있고, 숙련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전문가의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요?
‘이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던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어’ 더 나아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고객(customer)이 아닌 팬(fan)이나 팔로워(follower)가 생깁니다.
코로나와 같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일을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쓰인 이 책이 제시한 전문가의 정의는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전문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줍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하나요?
전문가의 정의까지는 사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나눌 전문성과 전문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준비 단계였죠.
다들 아마 여기까지 왔으면, 그러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가 궁금할 겁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도 되는 방법은 도대체 뭔지 어렵습니다. 이걸 생각하면 매번 어디 갇힌지 모르겠지만 갇힌 것 같은 느낌과 갈증이 듭니다.
우리가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하나 같이 같습니다.
"자기만의 길을 가라"
저는 신입사원 때 이 말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웃음 말고 헛웃음이요.
나는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고, 쌓인 게 없으니 통찰할 것도 없고, 당장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모험정신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게 헤매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자기만의 길’을 가란 말인가?
회사에 들어오면 회사의 교육 커리큘럼이나 커리어패스가 나를 이끌어줄 줄 알았는데 회사는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정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게 된 것은 그 정글 속에서도, 혹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황야 속에서도 길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알고 떠난다면 중간중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와있는지, 또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야 하는 길을 알아도 내가 다른 중간에 다른 것을 만난다면? 어떤 구간에서는 정글이나 황야를 만난다면?
그때 바로 나의 현재 위치와 방향 감각을 잃고서 ‘혹시 내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갈등과 방황을 시작할 수도 있고,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라’라는 매력적인 권유와 명령에 귀가 솔깃해지면서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낙오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겠죠.
근데 다들 아시지 않나요?
우리가 매년 다짐하는 다이어트도, 학창 시절 공부도 같은 매커니즘인데요. 어느 정도 들여다보면 사실 살 빼는 방법과, 1등 하는 방법 모두 간단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 하지 않고 계속해서 간헐적 단식이니 덴마크 다이어트니 토마토 공부법이니 하는 방법들을 더 들여다 본다는 것을요. 근데 그냥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면 되는 거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면서 꾸준히 공부하면 됩니다.
운동을 하건 공부를 하건 어떤 일을 하든지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독특하고 쉬워보이는 길을 내 길이라고 따라가기만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가 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전문가에 이르는 길이 전문가의 수만큼 제각각 존재하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단 [자기만의 길을 찾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보통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날 때부터 뛰어난 수행력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일에서의 전문가는 의도적으로 노력하여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가진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고 경험하여 그 경험들을 가지고 소화해 낸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책을 읽거나 남의 이야기를 들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체화된 노하우와 직감, 감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전문가라면 남들 보다의 어떤 +a를 가진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그 +a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뭐가 될 수 있을지 다양한 책과, practice, 제 경험을 구성하여 알려드릴게요.
step 1. 일 찾기
“일은 취미가 아니다”
신입사원 첫 교육 때 대표님께 들은 말은 “일은 취미가 아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취미는 자기를 위해, 자기를 상대로 하는 행위인 반면 일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위라는 점을 매 순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누군가를 보통은 ’고객(customer)’라고 하죠. 다만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고객은 조직 외부의 사람들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사람이 ‘고객’이라는 것을 안거죠.
나의 리더, 나와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모두가 고객이고 이 사람들에게 내 일의 가치를 인정받고 함께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작업’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숙련자와 전문가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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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2. 일 하기
“못하는 건 못하는 상태로 비워둬야 다른 동료가 채워줄 수가 있어요”
신입사원 때 제가 맡은 첫 업무는 회사에서 이제까지 한 업무들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PPT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한 업무들이 아니니 당연히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각 업무들에 대한 이해도도 낮았죠.
특히 ‘포트폴리오’라는 하나의 형식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기준이나 동일한 포맷/층위에서 다르게 쓰인 설명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그 모든 걸 잘하지 못했던 저는 2일 내내 그걸 끙끙 안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결국 PPT는 잘 완성했어요.
물론 칭찬도 받았습니다.
무엇으로 칭찬받았을까요?
바로 “디자인 잘하시네요”였습니다.
저는 기획이나 운영을 주로 맡는 직무로 입사했는데 첫 칭찬이 디자인이었습니다.
사실 내용을 깔끔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어서 PPT 디자인에 신경을 썼던 게 맞았습니다. 거기에 저는 뭐라도 하나 더 얹어 보고 싶어서 디지털 캠페인 업무면 노트북이나 핸드폰 누끼 사진을 넣는다거나 심지어 클라이언트가 삼성이면 삼성 갤럭시 폰으로 누끼 사진을 넣는 나름의 센스까지 발휘해 봤는데, 일을 맡겨주신 분은 이걸 알아봐 주신 거죠. 저는 인정받은 기분이었을까요?
아니요.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한번 피드백을 요청드리자 진지하게 돌아온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 번 100장 정도 되는 이 포트폴리오를 쭉 넘겨보세요.
넘겨보면서 내가 이걸 보는 사람이라면 뭘 봐야 할지 잘 보이는지, 다 보고 나서는 무슨 느낌이 들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
포트폴리오를 다 넘겨보고 제가 회고한 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이 포트폴리오를 볼 사람은 누구일까?
- 우리 회사의 예비 클라이언트
(한 번 일을 맡겨보고 싶은데 이름만 봤을 때는 뭘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네임밸류가 그렇게까지 큰 회사가 아니라 의문이 있었는데 포트폴리오를 보니 알짜배기였네! 일을 맡기기까지의 확신 주기)
-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의 내부 직원과 클라이언트
(안정적으로 해내고 싶다면 우리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한 적이 있으니 해보는 거 어떨까요? 바로 머릿속에 그림 그려주기)
▶ 근데 내 결과물은?
- 장표마다 디자인이 달라서 같은 분류의 내용인데도 계속해서 시선을 돌리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있다
- 우리 회사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업무 범위에 대한 이해도 없을뿐더러 제시도 못해주고 있다
- 문서를 보는 순서와 기준에 대한 로드맵이 없어 원하는 게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나 우리 회사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생각도 만들어줄 수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당장 내게 일을 시킨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고객이 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정의하고 그 고객의 관점에서 회고를 해봤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니 일의 방향성과 문제가 뚜렷하게 보이고 내가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보이더라고요.
다시 보니 나름의 센스를 발휘해 넣은 삼성 핸드폰 누끼 사진에서 홈 버튼이 날아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봤다면 뭐라도 더 얹어보고자 시간과 정성을 더해 한 그 일이 문서 전체의 퀄리티를 떨어져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겁니다.
저는 그 후로 선배의 이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채우지 못하는 것은 남겨둬도 돼요. 그래야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어요. 대신 잘하는 것을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전체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거죠. 그런데 남겨두지 않으면 뭐가 필요한 건지, 이걸 내가 건드려도 되는지 고민이 생기게 돼요. 그러면 채웠지만 부족한 하나 때문에 전체 결과물이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요”
물론 운 좋게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선배를 만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동료를 만나던 기억해야 할 건, 업무를 할 때 비워두는 무책임은 안되지만 남겨두는 고민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는 ‘시간 조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느낀 일 잘하는 사람, 저 사람은 전문가다 하는 선배들 혹은 사람은 모든 것을 혼자서 잘하는 슈퍼맨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 조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이전 경험에 비추어 추정하거나 자기와 함께 하거나 연결된 모든 것의 특성을 고려해 좋은 결과물이 무엇일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요.
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이면 함께 하고 싶다,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이지만 이 사람이 그리는 그림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보고 싶다 이 중 하나라도 느끼게 만든다면 이 사람은 자기만의 각으로 분명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의 요인이 이 사람의 어떤 한 끗 차이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개입하면서 종합적으로 격차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걸 전문가라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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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일 정리하고 공유하기
“이것도 성장, 저것도 성장이래. 아프면 다 성장이고 매출 많이 나왔으면 다 성장이야?”
보통 일의 마지막 단계에서 평과와 피드백을 진행합니다.
대부분은 매출 목표를 채웠다/못 채웠다, 잘했다/못했다로 그것을 마무리하고 판사가 판사봉을 치듯 땅땅하고 끝나는데요.
그런 것들이 개인에게 실제 일에 도움이 된 적이 있었나를 떠올려 봅니다.
심리학적으로 그러한 외재적 보상은 내재적 보상보다 오래가지 못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큰 의미가 없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신빙성이 높습니다.
단순히 잘했다/못했다와 같은 정량적 지표를 보완하기 위해 동료평가와 같은 정성적 지표를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근데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동료평가들은 긍정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는 말들도 많죠.
이게 오히려 동료들 간의 불신, 일에 대한 혼란, 불만의 재생산을 드라이브하기도 합니다.
동료평가를 하는 게 맞다/안 맞다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아마 집단 규모가 작고 사적인 친밀감이 높은 동료들과 진행해서 어제까지는 나와 밥도 먹던 사이인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평가했다는 것에 배신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고, 사실 그 동료는 피드백의 항목에 따라 ‘굳이’ 꺼내놓은 피드백일 수도 있겠고, 익명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을 기준 없이 막 뱉은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같이 프로젝트나 일은 하지 않았지만 ‘팀’이라는 회사 내 묶인 집단 분류에 따라 피드백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잘 모르고 하는 평가가 될 수도 있겠고, 프로젝트나 일로 앞으로도 볼 사이니 아무리 익명이라도 추측의 씨앗을 남기기 싫어서 모호한 평가만 남길 수도 있습니다. 혹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이 동료평가를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조직문화를 가지지 않은 한국 기업이 체질이나 조직/일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도입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겠고요. 게다가 이런 동료평가로 성과급이나 성과 평가까지 이어지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까지 모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평가 제도나 솔루션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 이 정도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나름의 시행 의도가 있다 정도로 정리될 수도 있겠습니다.
동료도 나의 내부 고객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것에 매몰되면 나의 진짜 고객을 위해 일을 한다거나 내 전문성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데에는 독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육 쪽에서 세계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높기로 유명한 핀란드는 평가지표를 잘했다/못했다가 아니라 잘했다를 세분화시켜 잘했다, 더 잘했다, 더더 잘했다와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고 따로 평가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평가하는 이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피드백하고, 평가받는 이는 앞으로 더 잘할 일을 보면서 나아가는 거죠.
이걸 제가 조직이나 산업까지 적용해 보자고 바로 제안하기엔 어렵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의 HR매니저이자 양육자로서 해볼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세상에 내가 원하는 일만 있을 수 없지만 내게 온 일들이 무엇이었고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특히 ‘이게 왜 나에게 왔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를 때는 이 워크 스프레드 시트와 동료 피드백 분석을 가장 성실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하나인데요.
내가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원하는지 만큼이나
사람들이 나를 왜 찾아오고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아래는 실제 제가 신입사원 때부터 작성하던 워크 스프레드 시트입니다.
일단 투입되었다면 모두 적어두고 아래 기준에 따라 객관화시켜 내가 현재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기별로 점검하면서 이를 근거로 하여 리더 면담이나 연봉 협상, 이직 이유를 확인하는 데에 활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리더 면담을 할 때는 이런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자잘한 것에만 여러 개 투입되니 집중이 떨어져서 주도할 수 있는 큰 거 하나를 했으면 좋겠다, 혹은 이 정도 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조직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데에 사용했고, 연봉 협상 시에는 팀 매출 시트를 확인하여 리더가 놓친 매출이나 투입률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또 보다 보면 경향성이 보이는데 내가 원하는 것과 조직이 요구하는 것의 차이가 점점 벌어질 때, 혹은 관련해서 나에게 업스킬링이나 리스킬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조금 더 가진 것을 잘 쓰고, 서로가 만족하고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직이나 부서 이동, 직무 전환을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작성할 때는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했습니다.
조직 관점 / 일의 목표 관점에서 이 일의 성공 여부
제안서라면 수주 여부, 기획서라면 실제 결과보고까지 어디까지 실행되었는지나 실현 가능성이 있었는지 리스크를 체크 못한 것이 있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개인적인 성장의 태 이전에 조직에 속해있다면 조직의 목표를 먼저 점검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목표가 모호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면 아래부터 해도 됩니다.
조직이 요구해서 한 일과 내가 좋아서 한 일 구분
조직이 요구해서 한 일이 있을 테고 프로젝트 가운데에서도 내가 원해서 시작하거나 하면서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구나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업무를 색상 별로 표시해 둡니다.
이를 바탕으로 의식에 있었든 무의식에 있었든 내가 원했던 업무의 지향과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점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일에 내가 들인 리소스
일정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는데 쓰인 투입률, 집중 시간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의 효율이나 효과성 여부, 어느 정도 협력해야 했는지 등을 최대한 객관화해서 표시해 둡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전체적인 시간 조망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갑니다.
함께 일한 사람들과 협력 구조 내 나의 역할과 관여 범위
동료 평가는 아니지만 혼자서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점, 도움 받은 점, 이 사람이 나에게 칭찬 혹은 피드백을 줬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내게 들렸던 점을 적어두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장점은 무엇인지 내가 나중에 도와줘야 하는 게 무엇인지, 내 성장 방향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프로세스 회고하기
유독 소통을 잘 못한 것 같다, 다들 일정이 촉박해서 정신없이 했다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근데도 촉박한 일정에서 소통도 별로 없이 일이 잘 끝났다는 건 누군가의 숨겨진 노력이나 기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고, 이 프로세스가 기존에 여러 절차를 거치던 프로세스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프로젝트는 프로세스를 회고해 보며 이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 내 일의 방식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정리가 완료되었다면, 분기별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분들, 혹은 팀원들에게 동료 피드백을 부탁드렸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평가 외에 ‘진짜 내가 일하는 사람’ 즉 내부 고객에게 나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가 궁금했거든요.
감사하게도 시간과 정성을 써야 하는 이 일에 응해주는 동료 분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개인적으로 폼을 돌린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동료나 조직문화도 있을 수 있어서 이 경우에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면서 가볍게 티타임을 요청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제 못한 일이라고 정의 내린 게 내일은 잘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제는 잘했던 게 오늘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능력이 좋아져서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고, 나의 솔루션을 믿고 함께 풀어준 동료가 있었기에 잘 끝낼 수도 있고, 상황이 달라져서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걸 잘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이것도 잘할 수 있고 저것도 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방식으로는 잘하는 것도 이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포트폴리오 PPT 만들기‘라는 업무를 못했다고 해서 또 그 업무가 왔을 때 안 받을 것인가 그런 문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정의한 내 일에 필요하다면 잘 못해도 해낼 수 있게 해야 하고, 사실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적절한 다른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나는 그 작업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능력이나 자원이 내게 있을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culutre deck을 만들어서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한편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중히 거절하고 아쉬워하지 않는 태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게 있다면 회사의 직무 체계가 갑자기 변경되어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짚어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culutre deck은 주로 회사에서 많이 만드는 것인데요. 단순히 ‘이건 하고, 이건 하지 않을 거야’ 정도의 쓸모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 가치나 신념,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리하여 ‘공유’하는 것을 뜻하죠. 그래서 ‘공유된 가치’라고도 불립니다.
원하는 건, 내가 그려온 나는 혼자만의 마음속에 존재하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남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남이 보는 나만 세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아마 동료평가를 해도 유난히 어려움을 겪었던 조직들은 나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 없이 남만 피드백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 조직의 culture deck 이 없는 조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데에 있어서 저 같은 저연차는 선택권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저는 항상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리더는 이 일이 잘되길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고, 그걸 위해 도와주고 싶어 한다. 나도 회사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회사도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제가 뭘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연하게 원할 때, 뭔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몰라 막연하게 어려움을 느낄 때는 제대로 요구할 수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휘둘리다가만 끝나는 경우가 분명 있었습니다.
그럴 때 시원하게 짚어주는 것도 리더의 전문성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이 서로 간의 소통이 조심스러울 때는 더 힘들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이 일을 하는 나에 대해 정리하여 조금씩 말해줄 필요가 있죠. 저는 그렇게 조금씩 하고 싶은 일로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앞서 네모칸에 있는 ‘이것도 잘할 수 있고 저것도 이렇게 저렇게 해볼 수 있습니다 ‘로 하는 저 문장이 굉장히 난잡하고 마음 어렵게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지 여쭤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제시할 문장은 이것입니다.
나는 시각화한 것은 가진다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은 책에서 요즘 자주 말하고 있는 문구라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시각화한 것은 가진다는 말이 가진 통찰이 몇 개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시각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가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고, 그것을 오래 보면서 이 위에 덧붙이거나 수정하면서 모양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각화를 해야만 세상에 보여줄 수 있고, 결국에는 내가 보여주는 것들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니 서로가 더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았나요?
프로젝트 과정 중 내가 모르던 나의 장점이나 이 일의 가치를 깨달았나요?
누군가와 함께 하며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었나요?
내가 어떻게 일을 할 때 내 역량이 발휘되고 성과가 나는지 알았나요?
실제로 TBWA의 조직문화 자회사를 만든 박웅현 님은 광고기획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일을 정의하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신 바가 있죠.
꼭 사람이 한 발로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어딘가를 가는 데에 있어 여러 발이 있으면 더 좋다는 것을 정리해보다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뛰어난 채용 브랜딩은 미디어 홍보가 아닌 구성원들의 행복으로부터,
진정한 퍼스널 브랜딩은 SNS 팔로워가 아닌 동료와 클라이언트의 인정으로부터.
언젠가 주운 저 말을 저는 조직문화 프로젝트를 하는 팀으로 이동하고 잊지 않고 싶어서 모니터 앞에 붙여두고 일을 했습니다.
요즘 같이 사람도 사물도 쉽게 묻혀버리는 세상도 없지만, 요즘 같이 발견되기 좋은 세상도 없습니다.
<전문가, 그들만의 법칙이라는 책>에서는 전문가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하며 책을 마칩니다.
진정한 전문가란 이미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발전적 문제해결 과정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정의가 의미 있는 이유는 책의 저자인 손영우 교수님 한 명이 내린 결론이 아니라 70여 명의 학생이 자기만의 그라운드에 대해 연구한 결과 나온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전문성이 꼭 하나의 프로덕트처럼 완성되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걸까요?
사실 전문가는 늘 과정 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네이버 expert 서비스를 둘러보며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전문가에게도 후기가 붙는다는 것, 또 후기나 전문가 스스로의 판단을 기반으로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라는 항목을 가장 상위에 노출시켰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전문가만큼이나 내가 가진 것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근데 그거 쉽지 않고, 조금만 편안해져도 잊기 쉽습니다.
사실 안주하지 않는 사람은 끊임없이 세상이나 자기의 일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뭔지 알고 관계 맺고자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알았다고 내일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 지금 아는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달라지면 달라진 대로 또 좋은 방식을 찾는 거.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기록, 관찰, 공유가 아닐까요?
결과에 따라 적당히 재단하지 않고, 알고 있는 것에서 멈춰 있지 않고, 혼자 알지 말고 같이 알아가며 공생 관계로 나아가는 거.
저는 군대를 다녀오진 않았지만 ‘영점 맞추기’라는 개념을 압니다.
일단 쏘고 조준, 쏘고 조준, 그렇게 맞춰야 할 것에 점점 가까워지고 집중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조준하여 내는 한 발도 가치 있지만 그냥 내는 한 발도 분명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많이 들리길 바라며, 일단 저부터 일단 쏩니다.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어쩌면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신입사원 때 리더에게 들은 조언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당신은 역량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뽑았죠. 하지만 역량과 성과는 달라요. 아직 성과는 내지 못할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당연하죠. 그래도 그 두 개는 구분해야 해요.
근데 태가 좋은 사람은 역량도 성과도 결국은 계속 성장하더라고요. 당신은 태가 좋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둘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전문가의 기본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임과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태를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아티클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문가의 +a는 무엇인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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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손영우 외, 전문가 그들만의 법칙, 2005.
야마구치 슈 외, 일을 잘한다는 것, 2021.
김호,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2021.
장인성, 마케터의 일, 2023(17쇄).
오바라 가즈히로, 프로세스 이코노미, 2023(7쇄).
sbs뉴스, “동료에게 밉보였다고… 토스 직원들 ‘줄퇴사’, 왜?”, 2023. 03. 02.
원티드 인살롱, “동료에게 주는 서술형 피드백, 막막해요… 어떻게 써야 하죠?, insight, original, 소통, 2022. 0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