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르포: 나의 PMS
아이를 낳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복직을 했다.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아 생리는 빠르게 돌아왔다. 생리와 관련된 몸의 변화는 출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간격도 일정했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았으며 생리양도 그만저만했다. 그러나 생리와 관련된 마음의 변화는 출산 전과 사뭇 다른 듯했다. 출산 전에는 생리 2~3일전 몸이 조금 무겁거나 처진다는 느낌 뿐이었다. 가끔 예민해지거나 짜증이 늘긴 했지만 컨디션이 아주 나쁘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등 여러 가지가 겹쳐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그런 줄 알았던 예민함과 짜증은 출산 후 생리 주기가 차츰 일정한 간격을 찾아가며 생리와 함께 규칙적으로 심해졌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책임과 의무가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언제나 잠이 부족했고 피곤했으며 남편보다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억울함이 pms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원인이야 어쨌든 생리 전 1주일 남짓의 극심한 감정 변화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그냥저냥 넘어갔을 수 있으나 남편과 아이와 언제나 함께라는 것은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스스로 pms를 개선해야 한다고 인지하기 시작했던 2~3년 전만 해도 pms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렇게까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인터넷으로 pms를 검색했다. 달맞이유나 밀크씨슬, 이노시톨 같은 약들이 좋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pms약을 검색해보니 프리페민이라는 것이 대세로 나오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프리페민정을 찾지 못했다. 대신 모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리데이>라는 약을 발견했다. 달맞이유나 밀크씨슬과는 다르게 pms만을 위한 영양제인 듯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곧장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당시만 해도 30대 초, 중반이었던 나는 하루 비타민 한 알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을 정도로 건강에 자신했었다. 그러나 <리데이>만은 오로지 가족에게 민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매일 꼬박꼬박 먹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약의 성능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효과는 뚜렷했다. 생리 전 일주일의 괜찮은 컨디션이 서너달 정도 유지되었다. 3개월치 리데이를 다 먹고 재구매할 때가 왔지만 나는 굳이 재구매를 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이상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고 느꼈)으며 금액이 비싸기도 했던 탓이었다.
한동안 pms도 리데이도 잊고 바쁘게 살았다. 친정어머니가 보살펴 주던 아이가 4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고, 또 한 살을 더 먹어 유치원에 가는 동안 나는 점점 강도 높은 짜증과 우울함과 규칙적으로 맞닥뜨렸다. 불길한 의심은 생리 어플리케이션 달력을 열어 보며 확신이 되었다. 다시 찾아온 pms의 농도는 한층 짙었고 일상의 한 조각은 규칙적으로 무너져갔다. 잊고 있던 <리데이>라는 이름을 떠올려 검색했으나 이미 단종된 약이었다. 프리페민정을 발견했으나 호르몬제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리뷰를 보고는 단념했다. 술과 커피를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까지 읽고는 코웃음을 쳤다. 이건 어떤 부정적인 증상에서든지 먹히는 해결책 아닌가? 이때쯤 나는 pms에 대해 거의 단념하고 있었다. 내가 짜증을 내고 우울하다는 것 자체에 짜증이 났다. 짜증이 극심해질 때면 평소에도 즐기던 초콜릿, 햄버거, 맥주를 더 부지런히 찾았다. 과자 상자에서 꺼내는 초콜릿이 한 개, 두 개, 종류가 다른 것들 서너개로 점점 늘어났다. 햄버거에 곁들이던 맥주는 작은 캔 하나에서 큰 캔 하나, 작은 캔 두 개, 큰 캔 두개로 착실히 개수를 늘렸다. 안주가 더 필요하니 햄버거와 함께 시키는 감자튀김 사이즈를 늘리고 사이드 메뉴를 더 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세트 하나에 햄버거 하나를 더 추가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쓰린 속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마주하며 악순환이 반복될 무렵,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라는 책을 읽었다. 여성의 섭식장애와 관련된 정신, 심리학적 분석 및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pms를 받아들였다. 감정을 통제하려 할수록 나타나는 섭식 장애는 pms를 통제하기 위해 단 것이며 기름진 것을 마구 먹던 내 모습을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리 전 일주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짜증과 우울함을 꾸짖고 통제하려 했던 나를 위로했다. 생리 전 일주일 동안 굳이 뭘 열심히 하려 애쓰거나 그렇게 애써도 잘 하지 못하던 나를 용서했다.
섭식 장애에서 벗어나는 필수 단계는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옳은 감정이나 그른 감정은 없다. 감정은 그냥 감정일 뿐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란 단지 우리 스스로 바아들일 수 없는 감정을 말한다. 감정이 꼭 이성적으로 이해될 필요도 없다.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가 될 때도 있지만, 그런 이해는 대부분 감정을 충분히 경험한 후에 찾아온다. 감정을 속속들이 느껴보기도 전에 감정의 '이치'를 따지려 들면 혼란이나 분노에 사로잡힌다.
월경이 시작되면 그들은 자신의 진실에 가장 민감해지고, 더는 자신을 속일 수 없게 돼. 한 달 내내 막아왔던 감정의 물살이 상처와 분노의 급류로 터져 나오는 거야. 이 시기의 여자는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해.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토록 강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그녀가 오랫동안 자신의 진실을 억눌러왔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그리고 여자들도 자신에게 진실해질 때의 힘을 잊게 돼. 자기가 뭔가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하지.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저주로 받아들여.
- 애니타 존스턴,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에서
이후 pms가 찾아올 때면 나는 아이가 밥을 잘 먹지 못하거나 남편의 집안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애써 고치려 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 주거나 전자렌지에 햇반을 돌리고 조미김을 꺼내 저녁을 차렸다. 빨랫감을 며칠씩 쌓아 두고 소파에 가만히 드러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아이의 놀이방에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어도 치우지 않았다. 뽑을 줄만 알고 다시 넣을 줄은 모르는 그림책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면 햄버거나 떡볶이나 치킨을 시켜 먹었다. 예쁘지만 불편한 옷은 입지 않았다. 나는 즐거운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내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이또한 며칠만 버티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짜증은 솟지 않았고 우울함도 덜해지는 듯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나의 불행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짜증과 우울함을 지운 자리를 채운 것은 폭식과 무기력함이었다. 이대로 죽어도 그다지 큰 아쉬움이 없겠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실행조차도 귀찮을 정도가 되면 생리를 시작했다. 생리를 시작하면 폭식과 무기력함과 우울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텅 빈 냉장고를 스스로 요리해 채워 나갔다.
4주 중에 한 주, 인생의 25%를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었다.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아무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다독여 봐도 엉망이 된 내 몸과 마음과 집은 엄연히 현실로 존재했다.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한 대책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