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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Mar 21. 2023

7일의 우울 (3): 건실하고 성실한 스무하루

마이르포: 나의 PMS

아침 6시 5분에 첫 알람이 울린다. 끄고 10분간 단잠을 잔 후 6시 15분에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음은 벌떡 일어나야 하지만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고 천천히 머리를 일으킨다. 혈압이 낮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후 화장을 한다. 딸아이의 유치원 준비물을 챙긴다. 남편과 아이가 먹을 아침을 차린다. 아이를 깨워 식탁 앞에 앉히고 머리를 빗어 준다. 음식쓰레기 비닐을 챙겨 집을 나서면 7시 20분이다. 학교까지는 아침 교통정체를 고려해도 15분이면 도착한다. 아직 7시 40분이 되지 않았다. 8시 20분 아침 자습시간 전까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늘 수업 준비를 한다. 오전 중 수업이 비는 시간에 업무를 처리하는데, 오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업무가 없으면 다음 단원 수업 준비를 하거나 글을 쓴다. 4시 20분에 딱 맞추어 퇴근한다. 딸아이의 유치원까지는 신호가 걸리는 걸 고려해도 10분이면 도착한다. 5시가 되기 전까지 유치원 놀이터에서 보초를 서고 그녀의 스케줄에 맞추어 학원으로 데려다준다. 딸아이가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40분 남짓한 시간동안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차린다. 반찬은 주말에 미리 만들어 두었다. 꺼내어 데피기만 하면 된다. 6시쯤 학원 마칠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려온다. 둘이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 먹은 그릇을 치우고 건조기 속의 빨래를 꺼내 개어 정리한다. 딸아이가 혼자서 놀 동안 먼저 샤워를 한 뒤 아이를 씻긴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동안 남편이 퇴근한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남편은 냉장고에서 밥이며 반찬을 꺼내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 그동안 딸아이의 학습지를 봐 주고 내일 그녀가 입을 옷과 준비물을 챙긴다. 8시 30분이다. 이때쯤이면 거의 녹초가 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소파에 드러눕는다. 남편이 야근으로 퇴근이 늦는 날에는 스스로 놀게 하거나 텔레비전을 틀어 준다. 9시가 되면 딸아이가 자러 들어갈 시간이다. 내가 재우는 날도 있고, 남편이 재우는 날도 있다. 대체로 하루씩 번갈아가며 재우지만 남편의 야근이 잦아 내가 재우는 날이 많다. 딸아이는 9시 30분을 전후로 잠이 든다. 거실로 나와 핸드폰을 든다. 야식을 먹는 날도 있다. 11시가 되기 전에 졸음이 밀려와 깊은 잠을 청한다.




워킹맘이 되면서 일도 육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봤으나, 나는 이제 5년차에 접어든 워킹맘 살이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겸손하게 말하면 운이 좋았고 건방지게 말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매사가 빠른 성격 덕을 봤다. 식사는 5분 내지 10분이면 끝났다. 종종걸음에 가까울 정도로 걸음걸이가 빨랐다. 타이프 치는 속도가 빠르고 문서 작업도 빨리 해내는 편이라 같은 교무실을 쓰는 동료들에게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냐는 농담을 자주 들었다.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해 항상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3등 안에 내놓았고 1등이라는 메시지 회신도 종종 받았다. 언제나 학교에서는 1등으로 퇴근했고 유치원에서는 꼴지로 아이를 하원시켰지만 종일반을 신청할 정도로 늦지는 않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바쁜 3월 내도록 칼퇴근을 하면서 동료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해야 할 일을 놓치거나 미룬 적은 없었다. 학기 중의 업무들은 모두 학교에서 매조지했으며 집으로 노트북을 가져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강제하거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추진하는 업무가 아닌 이상 이상 초과근무를 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해야 할 수업량이 적거나 업무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교과도 물론 힘들겠지만 국어과라는 특성상 연구해야 할 주당 수업 시수가 많많았고 방과후 수업, 보충 수업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대체로 가볍지는 않은 교무부나 연구부 업무를 맡으며 담임 업무도 수행했고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몫은 해냈다. 학교 업무가 비는 시간 틈틈이 인터넷으로 집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주말이 가까워지면 온라인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일요일 오후에는 다음 주에 온 가족이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 아침이면 달걀 프라이를 굽고 과일을 썰었으며 김이나 국에 밥을 말아 남편과 아이가 먹을 식사를 차렸다. 퇴근하고 아이를 하원시키고 학원을 보내느라 바쁜 저녁 시간에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전자렌지에 데펴 줄지언정 배달음식을 시키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어 정리했다.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과 입을 옷을 챙겼다. 아이 공부를 시키고 학원을 알아보고 데려다 주었다. 아이가 친구와 소풍이나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도록 엄마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가족 나들이를 갈 때면 종종 유부초밥이나 김밥으로 도시락을 쌌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 아이를 재우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시켜놓고 남편과 함께 맥주나 와인을 마셨다. 식탁 의자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거실 너머 야경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던 시절에도 출근하기 전에 어머니를 미리 부르지 않았고 퇴근과 동시에 어머니도 퇴근시켰으며 어머니께 아이의 삼시세끼 끼니와 우리집 살림은 맡기지 않았다. 이때는 아이가 많이 어렸으므로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일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상이었다. 남편의 퇴근이 계속 늦어지거나 그가 조금만 집안일을 등한시하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이 그러하듯 나만의 시간과 오롯한 휴식을 언제나 갈망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이 비극적이거나 우울하지는 않았다. 매일의 바쁜 일상은 평생 의지하며 함께할 반려자를 얻어 가정을 꾸리고 삶의 가장 큰 행복이며 보람인 자식을 얻는 이가 져야 할 당연한 책임이었다. 이 사회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자 학교의 구성원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온통 책임과 의무로 가득한 하루 사이사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네일숍에서 손톱을 정리하고 마사지숍에서 스킨케어를 받기도 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즐거움이이었고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또 다른 방법이었으며 꽉찬 하루하루라는 쳇바퀴를 굴리는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이 쳇바퀴는 가끔 탈선했는데, 가족이 아프면 그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쳇바퀴를 굴려야 했고 내가 아프면 쳇바퀴를 완전히 멈추어야 했다. 멈춘 쳇바퀴를 다시 굴리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함을 알기에 오래도록 쳇바퀴를 잘 굴릴 수 있도록 컨디션을 잘 조절하려 노력했다. 스스로가 기특할 정도로 나는 내 삶에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기특함은 스무하루를 채우기 무섭게 물거품이 되었다. 스무하루 정도 열심히 매일을 살고 나면 12시가 된 신데렐라처럼 집 안에서의 일상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집 밖에서는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조금 예민해질 뿐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업무를 처리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서 지쳐 있었기 때문이라며 완전히 멈춰버린 집 안에서의 일상을 애써 부정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pms의 특징 중 하나였다. 밖에서는 사회적으로 보는 눈이 많기에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적인 상태를 표출하게 되며, 밖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더욱 증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쩌다 컨디션이 떨어졌을 뿐이라고, 내 진짜 모습은 스무하루 동안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는 나라고, 처참할 정도로 달라진 나의 7일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나머지 7일은 21일마다 꼬박꼬박 나를 찾아왔다. 이런 일상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다니게 될 동안 또 다른 쳇바퀴가 되었다. 나는 무엇이 진짜 나의 모습인지 의심스러웠고 결국 이 7일도 나의 모습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저장되지 않고 계속 흘렀으므로, 건실하고 성실했던 21일로 건실하고 성실하지 못했던 7일을 메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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