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Mar 14. 2023

7일의 우울 (2):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우울

마이르포 : 나의 PMS

우리 부부는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육아독립군 워킹맘, 워킹대디가 되었다.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내가 퇴근길에 아이를 하원시키기로 했다. 덕분에 더 이상 친정어미니의 희생어린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나만의 시간은 금쪽보다 더 귀해졌다. 쳇바퀴처럼 일과 육아가 이어지며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다 모처럼 금요일 저녁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약속을 잡아 외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이 7시쯤 귀가한 것 같았다. 친구와 약속 시간을 7시 반으로 잡았다. 남편에게 이날만은 일찍 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남편의 퇴근이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금요일 저녁이니 차가 막혔다. 남편은 7시 반이 다 되어 퇴근했다. 나는 7시부터 핸드폰만 붙잡고 안절부절못하다 친구에게 급히 연락했다. 약속 시간을 30분만 늦추자고 했다. 남편이 퇴근했을 땐 이미 약속 시간이 10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미안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외면하고 다급히 집을 나섰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제일 먼저 온 버스를 타고 환승하려고 했는데 버스를 잘못 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땐 8시가 넘어 있었다. 친구는 조금 더 지나면 내가 오겠지, 내가 오겠지,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며 아낌없이 담배연기를 들이켰다고 한다. 친구는 나보다 언니였고 미혼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화가 났지만 내 탓이 아님을 알기에 애써 구겨진 얼굴을 감추며 화를 삭혔다. 나는 누구의 탓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불금이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만 했다. 




시원한 맥주에 맛있고 기름진 안주를 먹으며 친구와 새벽 한 시까지 수다를 떨었지만 나는 슬프고 우울했다.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평소에는 금요일마다 잘만 칼퇴를 하면서 왜 오늘따라 그렇게 늦어야만 했을까? 자기 약속이 있을 때면 칼같이 퇴근해서 바로 출발한다면서, 내 약속에는 이렇게 훼방을 놓을까? 자기는 회사를 마치고 바로 약속을 잡아서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되지만 나는 왜 항상 남편 퇴근 시간 눈치를 보면서 모임 때마다 지각하고, 눈치를 볼까? 원망은 곧 억울함이 되었다. 남편은 내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 등원 준비를 하는데 나는 퇴근 후 남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며 저녁밥을 차리고, 공부를 시키고, 목욕을 시켜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처럼 퇴근 후 자유시간을 단 한 번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억울함은 연기처럼 피어 올랐고 슬픔에 눈이 매웠다. 남편의 회사 생활에 얽매여야만 하는 것이 슬펐다. 약속장소로 향하는 짧고도 머나먼 길에서 억울하고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점차 초조해졌다. 지금이야 아이가 어리니 어쩔 수 없지만 훗날 아이가 다 자라 독립한 후 남편과 둘만 남아서도 이렇게 남편의 밥을 챙기고, 남편의 스케줄에 얽매어야 할까.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 딸아이가 독립하면 우리 졸혼하자고. 너무 답답하다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남편은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졸혼 이야기를 꺼낸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말그대로 노발대발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간 냉전에 참전했다. 전쟁은 나의 생리가 시작되며 끝났다. 나는 말을 너무 심하게 했다고 사과했다. 남편은 덤덤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으리라.




생리 전 증후군 때문에 평소보다 예민하여 짜증이 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짜증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었다. 그 생각들 중 쓸 만한 생각, 좋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남편은 일과 가정에 충실했을지언정 나를 옭아매지 않았던 것처럼. 짜증은 순간의 감정에 가깝다. 폭발한 후 가만히 내버려두면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짜증이 불러일으키는 우울은 한 주 내도록 악취를 풍기며 나를 괴롭게 했다. 3주의 나는 나름대로 계획적이며 규칙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3주의 마지막 즈음 짜증으로 촉발되어 하루하루 강도를 더해가는 우울한 1주일을 버티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나만 괴로운 것도 죽을 지경인데 이 괴로움 덩어리가 남편과 아이에게는 괴롭힘이 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몇 차례 반복된 우울로 인한 괴로움 덩어리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맞아야 했던 남편은 거의 체념했던 것 같다. 내가 화를 내고 울고 까칠해져 있어도 동요하지 않았다. 나의 우울함을 맞이하는 그의 태도는 이미 죽어버린 거목이었다. 동요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으며 쌓아왔을 그의 슬픔이 나무의 죽음만큼이나 처절하고 끔찍했다. 딸아이의 동요와 눈물과 불안을 생각한다면 남편의 고통은 제곱이었을 것이다. 딸아이는 내가 화를 낼 때면 엉엉 울었다. 잘못했다고 애처로울 정도로 싹싹 빌며 사과했다. 가끔 엄마가 그때 그랬다며 날카롭게 회상했다. 그런 딸아이에게 아무리 사과를 해도 미안함과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는 착실하고 성실했던 3주 내도록 나를 반성하게 했다. 반성해도 개선되지 않는 남은 한 주 때문에 또다시 돌아오는 3주는 아직 여물지 않은 반성과 후회의 연속이었다. 도망치듯 찾은 해결 방안은 가장 어리석은 해결 방안이었다. 폭식과 폭음이었다.





이전 02화 7일의 우울 (1): 까칠해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