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Mar 07. 2023

7일의 우울 (1): 까칠해지다

마이르포 : 나의 PMS


나와 6살 난 딸아이는 오후 6시에 저녁을 먹는다. 7시 반쯤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자니 저녁 식사가 너무 늦어져 먼저 식사를 한다. 남편이 먹을 밥과 반찬도 미리 차려 둔다. 한 김 넘게 식은 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녁을 두 번 차리자니 너무 바쁘다. 목욕을 시키고 책을 읽히고 학습지를 확인하고 빨래를 개는 사이 남편은 식어버린 저녁을 혼자 먹고 개수대에 빈 그릇과 수저 따위를 넣는다. 나와 아이가 먹은 그릇은 이미 식기세척기 속에 들어가 있다. 개수대에 든 건 고작 밥그릇, 국그릇, 4칸 나눔 반찬 접시 뿐이다. 짜증이 난다. 어차피 식기세척기에 넣어야 하는데 물 잠깐 틀어서 음식 찌꺼기 떼어내고 바로 넣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 남편은 잘 떨어지지 않는 음식 찌꺼기를 불려 놓으려 했다고 항변하지만 소용없다. 짜증이 치솟는다. 냄비나 후라이팬에 붙은 찌꺼기도 아닌데 물 잠깐 틀어서 손으로 휙 씻어내고 넣으면 끝날 것을. 꺼내 놓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지. 기어이 그 자리에서 개수대를 치우고 식기세척기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욕설이 섞인다. 과하다. 화가 난 건 나인데 남편의 눈치를 본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본다. 생리 예정일까지 7일 남짓 남았다. 다시 한 번 욕이 튀어나왔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더라니 이번 달도 여지 없었다.



딸아이는 언제나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 스스로 떠먹는 것도 굼뜨고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것도 굼뜨다. 음식을 가려서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저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면 스스로 입 안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치원 선생님은 딸아이가 음식을 잘 받아 먹는 편이라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으셨단다. 그러나 언젠가 스스로 숟가락질도 하고 젓가락질도 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야 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늘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심하다. 가만히 곱아 보니 20분 남짓 동안 한 숟갈도 스스로 떠먹지 않았다.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았다. 아이는 스스로 밥숟가락을 뜨기는커녕 몸을 배배 꼬고 식탁 의자에서 벗어나려 용을 쓴다. 버럭 화가 나려는 것을 간신히 붙잡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혼자 알아서 먹으라고, 엄마는 그 꼴을 보기 싫다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납죽납죽 밥만 잘 받아 먹다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딸아이는 혼자 식탁 의자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다가 달그락달그락 몇 숟깔을 간신히 뜨다가 안방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와서는 잘못했다고 또 엉엉 울었다. 그런 딸아이 앞에서 제발 밥 좀 알아서 먹으라고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오늘따라 유난히 짜증스런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곧 생리를 시작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극심한 PMS, 생리 전 증후군은 과거를 회상하며 최초로 자각했다. 이십대 중반,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7박 9일의 터키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인천공항에 내려 우리 집이 있는 역까지 ktx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환승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첫 번째 기차가 연착되면서 시간이 꼬였다.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검색하다 짜증이 났다. 속으로만 욕을 한다는 것이 그만 입 밖으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어머니는 나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버럭 성질을 냈다. 어디서 함부로 성질을 내냐, 성질낼 일도 아닌 걸 아지고 성질을 부리고 있냐, 저만 잘나서는 제 맘대로 성질 부리면 다냐, 어머니의 성질에 나는 검색을 멈추고 눈물을 쏟았다. 남동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한 눈으로 나와 엄마만 번갈아 볼 뿐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이틀 뒤 생리를 시작했다. 여행 기간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덕분에 그때 언제 생리를 시작했는지 지금도 또럿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후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반복되는 짜증과 분노를 되짚어 보니 하나같이 생리 전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으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PMS 증상 발현이 그때였던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어른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고 단정한 모범생이었다. 좀처럼 대인관계를 넓히지 못하고 깊지는 않지만 좁은 친구관계만 유지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벽돌책을 탐독했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까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은 교직과 맞지 않았다. 교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서른을 넘으면서 나는 세상을 향한 모서리를 깎기 시작했다. 매사에 미리 계획을 세웠다. 오늘 실패해도 내일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때로 아이들이 나쁜 짓을 일삼아도 이유가 있었겠거니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짜증은 시간은 딱딱 맞출지언정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나를 덮쳤다. 너무 잘 해 보려고 애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거라 생각했다. 항상 앞날을 계획하고 군걱정을 일삼은 탓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짜증의 계기는 지극히 사소했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짜증이 막 나려 하면 어떻게든 무마시키려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으나 한 번 불붙기 시작한 짜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크게 이어졌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불꽃처럼 시작해 산불처럼 타오르는 짜증을 관찰해야만 했다. 짜증으로 시작된 나의 감정은 곧이어 분노와 우울함과 무기력함과 폭식을 낳았다. 폭식이 절정에 달하며 몸이 무거워지면 곧 생리를 시작했다. 7일의 우울은 생리의 시작과 함께 끝났다. 나는 마흔을 코앞에 두고서야 십 수년 넘게 이어졌던 나의 PMS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