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식는 순간

by 이주성

몇 주 동안 아무렇지 않게 33도의 기온을 웃돌고 있다. 올해 봄, 무더운 태국을 다녀와서인지 더위에 제법 강해져 있었는데, 한여름 습도를 잔뜩 머금은 더위 앞에서는 장사도, 경력자도 없는 것 같다. 머리와 어깨 위로 무거운 태양을 이고 화수분처럼 땀을 내뿜었다.


한여름만큼 시끌벅적한 일과와 걱정이 지나가면, 그럼에도 내가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가 저물 때쯤 돼서 문밖을 나서거나, 오래 닫아둔 창문을 밀어 열면, 분명하게 나는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여름이 식어가고 있다는 것. 살며시 손을 뻗어 허공 위로 휘저어보고, 눈을 감은 채로 잔향 같은 열기를 들이마시자 옅은 여름 냄새가 불어온다. 하루 종일 내리쬐던 걱정들이 무색하게 귓가는 고요해진다. 한낮에 뭉친 구름도, 낯선 도시의 빌딩도, 각자의 무엇에 지쳤던 사람들도 미지근한 색으로 저문다.


여름이 식는 순간.


2024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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