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것, 다시 시작한 것, 감이 온 것 그리고.

2021년 5월 28일

by 지금은 함박꽃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 다시 시작한 것, 몇 번 해서 감이 온 것, 한 달여를 기다려 결실을 본 것이 한꺼번에 쏟아진 날이다.

1. 내 인생에 처음 시작한 것

이번 주 수요일에 나의 음력 생일이 지났으니 사십구 년을 살고 오늘은 삼 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몸 안에 쌓인 독소도 많을 것이다. 그 독소로 인해 지난 건강검진에 초음파 검사를 신청한 3개의 검진에서 모두 양성종양이 있다고 하였다. 악성종양이 의심된다고 한 검사도 있었으니 좀 놀랄 만도 한데 “그래요?” 정도의 반응을 보인 나보다 더 놀란 언니와 엄마의 걱정에 디톡스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늘어난 지방도 빼고, 독소도 빼고, 빠진 자리에 새로운 영양소를 채워 몸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기분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서 거금을 들여 카드를 긁었다. 사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엄마가 하시고 효과를 봤다며 봉투까지 챙겨 주시며 ‘꼭 너도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까지 받았으니 안 하고 버틸 이유도 없었다.

오늘 생애 처음으로 디톡스를 시작했다. 퇴근 후 오늘 저녁부터. 토, 일, 월, 화. 세 끼를 알약과 가루, 가루를 녹인 주스와 과일, 야채 등을 중심으로 먹어보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곡기를 안 대고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모처럼 나에게 주어진 나흘 동안의 휴가를 활용할 계획이다. 마침 디톡스 상품 회사의 프로모션으로 체지방의 변화를 필수로 3킬로그램 정도의 체중감량을 하면 냄비세트를 선물로 준다고 하니 일단 도전이다. 디톡스를 통해 몸도 건강해지고, 지난번 옷장 정리하면서 버리지 못하고 놓아둔 옷도 입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 다시 시작한 것

대학 졸업 후 20대에 직장생활을 시작을 했다. 처음 시작한 직장은 출근 시간만 1시간이 넘고 세 번 차를 바꿔 타야 하는 다른 도시에 있었다. 그때엔 자가용이 많이 보급되기 전이기도 했고 기계에 겁을 먹었던 기계치다 보니 차를 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피곤에 찌든 아침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시작했다. 퇴근 후 헐렁해진 시간에 시작한 기(氣) 운동. 스트레스도 풀고 근력도 기르고 명상도 하면서 삶을 보는 편안한 눈을 가지게 되었다. 평생회원이란 제도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평생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보험보다도 든든한 보험을 들어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뿌듯하고 좋아하면 뭐하나. 나약한 인간인 것을. 좋아하는 그 운동을 출산과 육아로 잠정 보류, 지치고 힘들다 방치. 사람들 만나 저녁 식사 시간이 행복해 미룸 등등의 이유로 간 날보다 안 간 날이 많은 세월이었다. 그나마 띄엄띄엄이라도 나가던 수련에 코로나 19로 인해 수련 시간이 줄어들고, 인원수를 제한하다 보니 아예 갈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오늘 코로나 19로 운영시간에 변화를 준 이후 처음으로 센터에 나갔다. 1년도 훨씬 지난 시간이다. ‘그래 이거였어. 이런 편안함과 시원함이 있었어.’ 다시 생활의 활력소를 찾은 기분이다. 내가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준 수련활동. 다시 시작했으니 일주일에 2~3번은 꼭 시간을 만들어 보자.


3. 몇 번 해보고 감이 온 것

완판본문화관에서 서각 강좌를 신청했다. 2년 전인가? 잊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평소 배우고 싶었던 일이고 나무와 글자, 그림이 주는 매력은 쉽게 물리칠 수 없어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서 금요일이면 나무 향 가득한 서각 공방에 앉아 망치를 톡톡 두드리며 음각을 시작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둘째 날은 창칼 만들기를 했으니 음각 기초는 2주 전부터 배워서 오늘은 세 번째 날이다. 남들에게는 3시간 정도가 주어지지만 퇴근 후에 참여해야 하는 나는 남들보다 50~60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 한 번의 강습 후 주로 숙련의 시간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연습 시간이 줄어들 뿐이니 참여가 가능하다 했지만, 30분 정도는 이래저래 준비하느라 소비하고 나머지 시간에 나무를 파내는 연습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 것보다 내 것은 늘 엉성했다. 오늘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질문했고 설명대로 연습을 하다 보니 미비하나마 감이 좀 왔다(싶었다). 그런데 감이 좀 왔나 싶은 그 시간에 마무리해야 한단다. 6시 50분 정리하고 청소해야 하는 시간이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몸에 익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난 감이 온 날이라고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음 주에도 넌 그 감각을 잃지 않고 할 수 있을 거야. 아자!’ 이렇게 쓰고 나면 왠지 그 감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4. 한 달여를 기다려 결실을 본 것

토요일이면 물 좋고 산 좋은 덕유산 자락에서 다양한 종류의 나비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며 나비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각양각색의 나비 모습에 반하기도 하고 덕유산의 점점 짙어지는 초록빛에 매료되어 휴일 아침 밀려오는 달콤한 잠의 유혹도 물리치고 매주 토요일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야 하는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 나비 생태학교에서 가져온 애벌레를 직장에 놓고 키웠다. 15일 전에 번데기가 되었는데 드디어 나비가 되었다. 암 검은 표범나비 암컷. 번데기에 보석을 달고 있었던 녀석은 나비가 되어서는 날개 뒷면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사일 전에는 암검은표범나비 수컷을 날려 보냈는데 오늘은 암컷도 세상에 나온 것이다. 너무 다른 암컷과 수컷! 표범나비인데 암컷은 표범무늬를 갖지 않고 검은빛을 띠고 있어서 나비 이름도 암검은표범나비이다.

‘4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데 오늘 날개를 펼친 것은 그 나비에게도 나에게도 행운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잔뜩 흐려있던 하늘이 점심시간이 되자 비를 쏟아부었다. 비가 오면 나비를 날려 보낼 수 없다. 날개가 젖어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던 차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자 날이 개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화 통에 넣어 밖으로 나가 철쭉꽃 잎 위에 올려주었다. 잠시 앉아 있다 힘차게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잘 살아라. 짝을 만나 너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를 바라.’ 한참을 서서 날아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습을 완전히 바꾸며 성장해 나가는 작은 생명의 변화 과정을 관찰하는 시간은 경이로움과 작은 설렘을 준다. 그렇게 키운 작은 생명이 무탈하게 자라 내 품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보낼 때는 뿌듯함과 잔잔한 감동도 있다. 바람 부는 오늘 밤도 잘 적응하렴.


글을 쓰는 동안에 하루가 지나고 컴퓨터의 날짜가 바뀌었다. 내 인생의 많은 날 중의 하루, 오늘 잘 살았다. 내일도 아니 오늘도 잘 살아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