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모르고 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하지만 위험이 큰 만큼 매혹적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 부안을 가기 위해 동진강을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았다. 가끔 고개를 돌려 동진강을 보면 허름한 고깃배 한두 척이 보이곤 했다. 그 배들은 동진강을 전세 낸 것처럼 거기 있었다.
한때 동진강 휴게소는 제법 규모가 큰 휴게소였다. 예전에 나도 그곳에 들러 밥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새 도로가 뚫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새로 난 길로만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사람들이 찾지 않더니 결국 휴게소는 문을 닫아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동진강의 신세처럼 이 휴게소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내가 동진강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결과였다. 새만금으로 향한다는 게 어찌어찌해서 길을 가다 보니 만난 게 동진강이었다. 그것도 강을 빠져나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만약 새를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김제에서 들어선 길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이어지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다행히 기름은 넉넉했고 우리는 시간이 쫓길 필요도 없었다.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어디론가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내 예상대로 멀리서 마을이 보였을 때 반가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새떼가 거기 있었다. 그날 내가 본 새떼 중 가장 많은 수였다. 하중도 인근에서 마주한 그들은 세상의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평온해 보였다. 그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은 가장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게 동진강은 그리 특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예전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았던 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새들이 거기 있음으로 해서 내게 강은 확실히 달라 보였다. 새들이 개입함으로써 강이, 바다가, 논과들이 내게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차 시동을 끄고 새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수백 마리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였지만 이내 전체가 날기 시작했다. 감탄이 저절로 나올 만큼 장관이었다. 나는 카메라 연사로 그 장면을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토록 조심을 했건만 내 마음과 달리 날아가는 새를 보며 야속함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새들은 자신들의 휴식을 방해한 내가 몹시도 얄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새들이 하늘로 나는 모습을 보는 건 장관이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겨울에 한 번씩 새가 하늘로 날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비축했을 체력을 날려버린 셈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방해꾼에 의해 휴식이 깨졌을 뿐만 아니라 비축한 에너지까지 낭비해야 했다. 지상에서 1m도 날지 못하는 내가 수백 마리의 휴식을 방해했으니 어찌 얄밉지 않겠는가.
나는 예전에도 여행을 다니면서 강과 갈대를 무수히 보았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더 특별했다. 아마 모르고 살던 동진강을 만난 반가움과 떠나버린 새떼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마 나는 조류 탐사를 다니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을 많이 겪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감사와 갈등을 함께 느낄 것이다.
그날 동진강은 평화롭게 흐르고 새들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거기 더 있고 싶었다. 하기는 내가 더 있고 싶다고 해도 어둠이 들이닥치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터였다. 나는 밤이 오기 전에 동진강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동진강에서 서둘러 발을 빼는 일, 그게 내가 미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