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하구둑, 가창오리 군무

by 산들

요즘 볼 수 있는 겨울철새 중 가장 큰 무리를 차지하는 건 가창오리이다. 천 마리나 이천 마리의 무리를 지어 있는 쇠기러기떼를 보는 것도 장관이지만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허공에서 춤을 추는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저녁 섭식을 위한 준비단계로 알려져 있다. 마치 허공을 무대로 음악에 맞추어 춤이라도 추는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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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창오리의 90%가 한반도 남쪽에서 겨울을 난다고 하니 이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눈앞에서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건 축복에 가깝다. 평생을 살면서 그처럼 많은 가창오리를 직접 보는 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가창오리 군무를 직접 눈으로 본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가창오리는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시베리아 동부에서 주로 번식하고 한국·일본·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고 알려져 있다. 가창오리는 우리나라의 한강 하구와 충남 천수만을 거쳐 금강 하구,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등에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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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괭이갈매기


운이 좋으면 한 번에 보기도 하지만 여러 번 가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점, 그게 새가 다른 자연물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점이다. 새는 날개가 있으니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늘은 열려 있기 때문에 새를 붙잡아 둘 수도 없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새를 지상에 붙잡아 두는 순간 비극은 시작한다. 눈앞에서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채워지지만 새는 자유를 잃고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텃새는 사는 동네가 일정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철새는 상황이 다르다. 겨울철새는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봄이 오면 다시 고향으로 날아간다. 그러니 빠르면 1월, 늦어도 3월 정도면 한반도에서 겨울을 지냈던 철새들은 거의 다 사라진다. 이조차 시기를 두고 확정하는 것이 아니니 보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 수시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새를 보기 위해서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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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요의 비상


새가 날아가는 것은 허공에 글을 쓰는 것과 같다. 허공은 그대로 비워둘 수도 있다. 하지만 새가 날아오르는 순간 그 허공은 순식간에 글로 채워진다.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면 글자들이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져 툭툭 떨어진다. 나는 새가 쓴 글을 읽다가 그만 놓치고 만다. 내 낡은 눈으로는 그 글을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다. 그때만큼은 나는 문맹에 가깝다.


새가 물살을 따라 움직일 때 일어나는 잔물결의 파동마저도 수많은 울림을 유발한다. 먹이를 찾기 위해 물속으로 머리를 부지런히 들이밀거나 깃털을 손질하기 위해 머리를 제 몸에 부지런히 비벼댈 때마다 내 마음에는 여운이 느껴진다. 새가 물과 밀당을 하면서 때로는 거칠게 물을 밀어내고 하늘로 박차 오를 때나 물의 품으로 안길 때의 떨림은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나는 그때마다 짜릿하다.


한두 마리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 수십, 수백도 아니고 수십만 마리라니.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겠는가. 그러니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창오리 군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나만 해도 가창오리를 보러 세 번 갔으나 실제로는 한 번만 보았을 뿐이다. 오늘만 해도 잔뜩 기대를 안고 갔다가 휑한 바다만 보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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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포 십자가뜰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가창오리가 흔적도 없다. 뿔논병아리 몇 마리만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웅포까지 가 보았지만 역시 없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건만 그 많던 새는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맞추어 다시 나포 십자가뜰 조망대로 향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가창오리와도 헤어질 때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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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창오리를 보았다는 동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고 나선 길이었다. 어제 동영상을 올린 이도 5시 45분경 조망대 근처에서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가창오리 군무를 보았다고 했다. 어제 보았다고 해도 오늘 간다고 새를 반드시 본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오고 안 오고는 가창오리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온다는 확신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기다리겠지만 새를 두고 그런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러니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계속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


대개의 가창오리는 해질 무렵 저녁 쉼터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 대개 한두 시간 전에는 무리로 바다에 모여 있어야 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중도처럼 보인다. 그렇게 오리들이 조금씩 이동을 하다가 떠날 때가 되면 일시에 한꺼번에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만약 가창오리 떼가 바다 위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날에는 군무를 볼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물론 다른 곳에 있다가도 날아오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정말 운이 좋을 때만 이런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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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를 볼 때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창오리가 떠나기 전에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에 와서 보리라는 보장은 없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가지만 막상 보지 못하면 서운하기 짝이 없다. 가창오리가 없는 텅 빈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더 허해진다. 그래도 가창오리는 우리의 마음에 기대를 불어넣는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준다. 그 기대가 남아 있기에 수백 킬로를 마다하지 않고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기 위해 달려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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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의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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