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때가 중요하다

by 산들

새를 보러 가는 날은 마음이 짠하다. 겨울새의 경우는 더 심하다. 나야 새를 볼 수 있으니 좋지만 조심한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는 기척만 있어도 새들이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그러기도 한다지만 그거야말로 못할 일이다. 어쨌거나 탐조에는 공존할 수 없는 양날의 칼처럼 설렘과 미안한 마음이 뒤따른다.


DSC_6311.JPG
DSC_6312.JPG
DSC_6313.JPG


이번에 보기로 한 새는 마도요. 금강하구둑에서 몇 마리를 보아서 인상이 좋은 새이다. 하지만 천 마리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리 머지않은 거리에서 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있는가. 가장 큰 난관은 물때였다. 바다로 나가다 보니 이전에 강이나 하천에서 새를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긴 셈이다.

마도요는 긴 부리를 갯벌에 박고 게·새우·조개·물고기 따위를 잡아먹는 새이다. 게는 다리를 모두 떼어내고 몸통 부분만 먹는 습성이 있다. 아랫 등과 허리가 흰색이기 때문에 나는 모습을 보면 알락꼬리마도요와 구분이 가능하다. 마도요는 가늘고 길게 우는 특이한 울음소리가 인상적인 새이다. 그래서인지 떠나고 난 자리의 여운을 오래 떠올리게 하는 새이다.


알락꼬리마도요의 학명(Numenius madagascariensis)에서 속명인 누메니우스(numenius)는 고대 그리스어로 마도요 종류를 일컫는 말로 추정되는 누메니오스(noumenios)에서 유래했다. 누메니오스는 초승달(neos+mene=new moon)이라는 뜻이다. 부리가 굽은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서 붙은 이름으로 마도요 종류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알락꼬리마도요는 마도요보다 약간 더 크며 최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는 갯벌 매립과 해양 오염 및 불법 조업 등으로 먹이원이 줄면서 세계적으로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흔히 마도요와 알락꼬리마도요를 구분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마도요가 날 때 허리와 등의 흰색이 뚜렷한데 반해 알락꼬리마도요는 허리에 흰색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날개의 아랫면에는 갈색 가는 줄무늬가 빽빽하다.


DSC_6322.JPG
DSC_6333.JPG
DSC_6334.JPG


유부도에 갈 때도 물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때는 간조(干潮)와 만조(滿潮) 사이의 시차를 말하며, 지구를 공전하는 달에 의한 조석현상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흔히 ‘태양-지구-달’ 또는 ‘태양-달-지구’의 순서로 3개의 천체가 일직선으로 놓이는 날에 인력이 가장 커지기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는 바닷물의 양이 가장 많은 날(사리)이 생긴다. 이처럼 인력에 의하여 조석현상이 생기면서 물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조석간만의 차이야 어려서부터 배웠던 일이지만 그게 새를 볼 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민들이야 물때가 생계에 직결되기 때문에 민감했겠지만 육지에 사는 이로서는 물때를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전에는 어민들이 오랜 경험으로 물때를 알았다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국립해양조사원에선 과학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매일 조석 수치를 발표하고 있다. 그걸 조석표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지구와 달 사이의 인력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막연했던 지식이 새를 통하여 이처럼 눈앞에서 실현된다는 점이 실감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식물이나 나비, 그리고 새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것도 보이지 않는 생명 사이의 인력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아무 때나 가능한 게 아니라 적정한 때, 적절한 기회에 자신에게 온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연히 딱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관심이 동하고 몸이 따라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지식도 눈으로 보지 않으면 실감이 덜한 법,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때가 7m에 달한다는 이야기에 부랴부랴 우리는 마도요를 보기 위해 서천으로 향했다. 적당한 시간을 맞춘다고 맞추었으나 이미 도착했을 때는 만조에 가까웠다. 당연히 바닷가를 가득 채우고 있으리라 기대했던 마도요는 한 마리도 없었다. 파랗게 넘실거리는 바닷물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게다가 바람마저도 매서워서 밖에 오래 있기 힘들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 새는 바닷가 근처까지 나온다. 바닷물이 찰랑찰랑 밀려오면 새도 덩달아 눈앞까지 오는 셈이다. 하지만 간조 때는 바닷물이 멀리 있기 때문에 새 관찰이 쉽지 않다. 바닷가에서 새를 볼 때 물때가 중요한 이유이다.

DSC_6411.JPG
DSC_6412.JPG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그곳에서는 달리 할 게 없었다. 대신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지는 노을만이 넉넉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일행이 새 몇 마리가 있으니 얼른 가서 사진을 찍고 오라고 권한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달려갔다.

DSC_6432.JPG
DSC_6428.JPG


수십 마리를 족히 넘는 쇠기러기들이 거기 있었다. 사진을 담으려는 찰나 새들이 하나 둘 날기 시작한다. 속으로는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사진만 찍고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그들의 휴식을 방해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를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없는 천 마리의 마도요보다 그들을 보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들이 날아간 후, 텅 빈 공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겨울이 입춘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 오후였다.


DSC_6426.JPG
DSC_6397.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금강하구둑, 가창오리 군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