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

by 산들


사진 한 장이 60억을 호가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아무 사진이나 이런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사진을 찍건만 어떤 사진은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는다. 최근에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사이트에 올려 판매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개인 소장의 영역에만 머물던 사진이 자본의 힘을 빌어 공유의 개념으로 새롭게 등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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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야외로 나갔다가 제대로 된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있다. 이럴 때면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던 <노인과 바다>의 어부처럼 내 마음은 쓸쓸해진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기는 찍었지만 집에 와서 한 장씩 지우다 보면 마지막에는 건질 만한 사진이 한 장도 남지 않을 때처럼 허망한 날이 없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대어를 잡고 사투를 하다가 마지막에 놓친 이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날은 흔히 말하는 진이 빠지는 날이다.


어떤 날은 공들여 찍은 하루 분량의 작업을 공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운이 좋게 기대 이상의 사진을 얻기도 한다. 한 번은 수목원에서 우연히 만나서 찍은 새를 나중에 확인해보고 몹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소나무에 잠깐 들렸다 바람처럼 사라진 새였다. 알고 보니 그 새는 그동안 이름으로만 들었던 상모솔새였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행운처럼 우연히 길 나선 상모솔새가 초보에게 얻어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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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상모솔새


부지런히 찍었지만 사진의 초점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렌즈 탓을 해보지만 사실은 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쯤은 나도 알고 있다. 만약 렌즈 탓이라면 옛날 필름 카메라로 세상을 바꾼 사진을 찍은 이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만약 평생에 한두 번이나 만날 법한 인상 깊은 장면과 만난 날에 사진이 엉망이라면 더더욱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날의 추억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인지라 한탄과 함께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야생화나 나무처럼 식물을 찍을 때는 바람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변수가 없지만 나비나 새를 찍을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사진을 찍는 순간 조금만 흔들려도 피사체를 대할 때의 내 마음과 달리 나온 결과물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집에서 확인할 때가 많다. 그러니 다시 시도하거나 사진을 찍을 기회를 노릴 수 없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요즘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사진 보정으로 어느 정도 살릴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란 턱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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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보기 힘든 삵


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새들이 얼마나 예민한가를 깨닫곤 한다. 사람보다 시각이 8~10배 정도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아무리 조심히 가까이 다가가도 새는 바로 눈치채고 날아오른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니라면 그들은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순간이 오래 기다려온 짝짓기를 하거나 하루의 허기를 속이기 위해 먹이를 구하는 시간이라면 나는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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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러기들이 오후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사실은 새 사진을 찍는 이들은 크게 몇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며 작품 사진처럼 멋지다. 대개 이런 사진은 고가의 렌즈를 바탕으로 오랜 인내의 고통 끝에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비 발은 생동감 넘치는 새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다른 한 부류는 관찰과 연구를 곁들인 경우이다. 이들은 생생한 현장 사진보다는 새 사진을 찍는 자체를 즐긴다. 이들은 자신이 찍은 새 사진을 진정으로 즐기며 그 순간 자신이 원하던 새와 함께 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한다. 그들에게 새를 만나는 일은 자연의 한 생명과 교감하는 일이며 그 스스로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그런 사진에는 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그이만의 스토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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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는 몇 시간을 바닷물과 싸운 끝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찍은 것은 풍경사진이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새 사진을 찍는 이 가운데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한 번에 자신이 원하는 평생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다음에 또 그 고생을 하며 나가겠는가.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 이라도 다시 사진을 찍기 위해 나선다. 혹시라도 조금 더 멋진 사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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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힘든 흰기러기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새를 좋아하는 이 가운데는 어디에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새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거리를 불문하고 달려가기도 한다. 물론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면 알려준 이는 괜히 마음의 빚을 진 느낌이 든다. 어제나 심지어 방금 전까지도 보이던 새가 그 사람이 오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전달받은 이도 그러려니 하며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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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를 보면서 성장한다.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이며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가를 깨닫는다. 해마다 어김없이 먼 거리를 이동해서 우리 곁에 오는 새들의 긴 여정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날아가는 동선을 이해한다는 것과 진정으로 새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겨울이 간다

한철 매섭고 혹독하고 차갑던

절망이 끝나간다


2월의 끝을 붙잡고

철새들이 마지막으로 날기 위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아서

이 땅 구석구석 낙곡을 쪼아대며

제 이름을 새긴다


이름이 희미해질 무렵이면

다시 그들은 자기 이름을 찾으러 올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 천수만 일기


이제 겨울이 끝나간다.

겨울을 지내기 위해 한반도를 찾았던 새들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진다. 이제 겨울철새들은 같이 모여 먼길을 떠나기 위해 모일 것이다. 그리고 먹이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먼 길 떠날 준비를 마칠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인사도 없이 훌쩍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동안 이 땅에 머무는 내내 별 탈 없이 잘 지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그러나 슬퍼하지 않겠다. 우리에게는 내년의 만남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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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 한 쌍, 곧 고향으로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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