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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ug 18. 2022

정부희 <곤충의 밥상> 1


흔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때로 우연한 만남이 기대 이상으로 뜻밖의 기쁨을 주는 일도 있다. 내게는 이번 탐사가 그랬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곤충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루어 둔 판각이 생각나 전주 완판본문화관 서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몸은 피곤했지만 자리에 앉으니 또 할 만했다. 가을에 있을 전시회를 위해 10시 무렵까지 판각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마침 EBS에서 <곤충의 생존 전략>을 하고 있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오후 내내 완주 봉서에서 보았던 곤충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예전이라면 아마 다른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끝날 때까지 곤충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들었다. 다시 돌이켜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것도 내 일상 가운데 불과 1~2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사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살면서 이렇게 곤충에 대해 시간과 공을 들인 적이 없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일정이었다. 아는 분이 본인의 일정이 맞지 않아서 신청을 했는데 갈 수 없다면서 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일정을 보니 하필 그때 다른 일이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곤충 강좌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권유가 나에게까지 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일정이 맞았다. 그 와중에 참석자들 때문에 일정을 몇 차례 바꾸고야 최종 확정이 났다. 처음 한 팀만 기획했던 게 반응이 좋다 보니 신청하는 이가 늘었고 결국 세 팀까지 늘어났다는 후일담을 들은 건 나중 일이었다.      


식물도 그렇지만 곤충을 공부할 때 가장 취약한 점은 도감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만나는 곤충의 차이가 클 때이다. 분명 같은 종인데도 전혀 다른 종처럼 느껴지는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차이가 초보자에게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특히 나 같은 초보자인 경우 더 그렇다. 하기는 이론과 실전이 다른 게 어디 식물과 곤충만 그런가. 우리 삶도 그렇다. 말만 들어서는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 형광등 갈기 하나도 남들은 다 쉽게 하는 것 같아도 막상 내가 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게 우리 인생이다.      



정부희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귀동냥으로도 많이 들었고 집에 있는 책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전공을 바꿔서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는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이후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 뛰는 학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는 작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학위를 받고 나면 관심과 열정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작가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특히 지난번 자연생태관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날짜가 바람처럼 후다닥 지나갔다. 드디어 야외에서 곤충을 만나는 날이 왔다. 학자들의 가장 취약한 점은 한 분야에 있어 자신의 전공 분야는 강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면 난감해진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해박한 천재가 있을 수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한 분야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게 우리네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곤충 이야기를 꺼내면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기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곤충에 대해 가졌던 선입관도 비슷했다. 전 세계에서 80만 종 가까이 되는 곤충들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중에 어느 과나 목, 아니 한 종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연구해도 특정 분야 일부만 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내 경험이지만 대부분 학자들의 강의는 재미가 없다. 뜬구름 잡는 식으로 강의를 하거나 현장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듣는 입장에서는 하품이 저절로 나온다. 반면에 필드에서 뛰는 사람들의 강의는 신선하다. 야생에서 갓 건져 올린 생동감이 넘치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실감 나는 현장 이야기가 사방에 묻어 나온다. 자연산 활어와 냉동한 생선 중에 어느 쪽이 맛있을지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아마 정부희 선생이 처음부터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밟았더라면 그런 생동감은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론으로 풀어낸, 그리고 논문을 쓰기 위한 공부는 한계가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정할지 모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드 이야기가 가미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진다. 야생 이야기인지라 언제 어떤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시간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들이 팍팍 튀어나온다. 한마디로 재료가 신선하니 굳이 무리하게 양념을 치지 않아도 감칠맛이 돈다.       



선생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알던 세계의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곤충을 모르고도 오십을 훌쩍 넘기게 살았다는 사실이 미안할 정도이다. 정부희 선생님 강의의 강점은 본인이 직접 키우거나 관찰하거나 경험한 이야기들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이야기들은 겉돌지 않고 마치 비빔밥처럼 살아 숨 쉬는 그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거기에 해박한 지식과 종횡무진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보따리는 덤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해박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곤충에 대해 질문하자마자 답이 술술 나온다. 그동안 쌓은 내공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드 경험이 풍부한 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비록 늦은 나이에 학계에 발을 들여놓았음에도 20여 년 동안 30여 권의 저술을 남길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정부희 선생의 강점 중 하나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생이 그걸 즐긴다는 사실이다. 설렘과 기다림이 없는 세상, 아침에 눈을 뜰 때 무엇인가 보고자 하는 또 보고 싶은 그게 없다면 얼마나 세상은 삭막할 것인가! 우리 삶은?     



나는 선생에게 평소 궁금했던 『곤충의 밥상』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 물어봤다. 출판사와 같이 공동으로 작업해서 나온 제목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만약에 다른 이가 ‘곤충의 밥상’을 차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책 제목이 딱 맞는 주인을 찾아간 셈이다. 정부희 선생이 그 자리를 지킴으로써 책도 내용도 온전히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곤충을 해충이나 두려운 거, 무서운 거, 피하고 싶은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일부의 기억에는 아주 안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네나 바퀴벌레 같은 경우이다. 어렸을 때의 불쾌한 경험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이도 있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바퀴벌레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흔했다. 사람이 나타나면 스스슥 사라지던 바퀴벌레, 자다 보면 머리 위로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지나가던 날도 있었다. 어떤 이는 지네에 물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어찌 좋은 기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시골에서 마땅한 놀이기구나 장난감이 없던 아이들에게 방아깨비나 매미, 지렁이와 개미, 그리고 잠자리와 개구리는 아이들의 삶의 일부라 할 정도로 친근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곤충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송충이였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한 번쯤은 숲길을 가다가 송충이가 떨어져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송충이를 잡아 여자아이들을 놀리는 데 쓰기도 했다. 사람들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본분과 분수 이야기를 했다. 사전에도 “자기 분수에 맞게 처신하여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온다. 자연의 순리를 내세운 말 앞에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고 절망했는지 모른다.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위해서 애꿎은 송충이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나비인 줄 모르고 어른들이 부적처럼 붙여준 송충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자신의 이야기로 믿고 꿈을 접었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비전 역시 빠르게 없어졌다. 


-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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