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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05. 2022

때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


올해 숲해설가 교육을 같이 받았던 이용만 선생이 장수로 토마토를 따러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농사를 짓던 동생이 얼마 전 농장을 수자원공사에 넘기느라 며칠 후에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연이 돌아왔다. 수자원 공사에서 용담댐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지를 매입하는데 동생의 토마토 농장도 거기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생의 고향은 장수군 천천면이었다. 옛 가야땅이었던 때문에 지금도 가야의 유적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이전에도 천천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천천에 가본 적은 없다. 함께 길을 걷는 동안 지명의 유래가 하늘 천에 내 천을 써서 ‘하늘내’라는 멋진 설명이 따라왔다. 나는 도착해서야 장수의 세 가지 레드 식품 중에 하나가 토마토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수의 사과와 오미자, 그리고 토마토가 장수를 대표하는 식품 세 가지의 포함된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장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과이다. 그런데 얼마 전 장수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이들이 강원도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십 년 동안 장수에서 뿌리내리고 살던 이들이 강원도로 이동하는 이유는 사과 맛이 예전처럼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는 대표적인 기온 차가 큰 걸 좋아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지난 장수나 무주가 사과의 산지로 유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침저녁 일교차가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와 한반도의 기후 변화는 장수를 더 이상 사과의 명산지로 떠올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장수와 인연이 아예 없지는 않다. 우연히 장수 사과시험장이라는 곳을 알게 되어 사과나무 두 그루를 배정받았다. 돈을 지불하고 나니 두 그루 사과나무가 내 것이라며 연락을 해왔다. 평생 살면서 사과나무를 1년 동안이나마 내 걸로 소유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끔 사과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가을, 사과가 먹을 만큼 익었으니 이제 따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평소 사과나무를 제법 큰 나무로 상상하며 살았다. 그 정도 굵은 씨알을 가진 사과가 열리기 위해서라면 나무 역시 상당히 크지 않을까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사과나무는 영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 역시 내 상상과 달랐다. 물론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나무에서 그렇게 다양한 크기의 사과가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보통 가게에서 파는 사과는 윤기가 흐르면서 빛깔도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내가 직접 딴 사과는 만약 가게에 내놓았더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그런 사과였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가족이 가서 난생처음 사과를 직접 땄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후에도 아이가 어렸을 때 <한우랑 사과랑> 축제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가끔 장수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때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농장에 도착한 우리 앞에는 엄청난 양의 토마토가 남겨 있었다. 무려 1,200평이나 되는 온실이었다. 아직 따지 않은 토마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토마토는 1년에 두 차례 출하를 한다고 했다. 이미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가을 농사로 한 차례 출하를 끝냈다고 했다. 그런데도 농장에는 풋내가 풀풀 풍기는 토마토가 한가득이었다. 며칠 전에 물을 끊은 탓인지 잎들은 말라가고 있었지만 토마토는 여전히 싱싱했다. 


작업을 하는 내내 농장 곳곳에서는 풀을 벨 때 나는 풋풋한 냄새가 났다. 평소 맡던 달달한 토마토와는 전혀 다른 냄새였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온 후에야 그게 토마토 냄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토마토를 따면서 자른 가지 부위에서 그런 냄새가 났을 것이다. 


오늘 수확하는 토마토는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이 선생의 동생은 막판에 이렇게 많은 토마토가 나올 줄 몰랐다며 아쉬워했다. 그건 다른 이들이 와서 토마토에 따는 데 대한 서운함이 아니었다. 하기야 귀농한 후 10년이나 농사를 지어왔으니 접는 마당에 어찌 섭섭함이 크지 않겠는가. 일찍 출하한 사람들은 헐값에 넘겼지만 다행히 늦게 출하하는 바람에 시세가 좋았다는 후일담도 들었다. 아내 말로는 올 가을 토마토가 비싸서 햄버거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고 할 정도이니 토마토가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이 갔다. 



같은 농사를 지어도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성실하게 일을 한다고 해도 웃을 수 없는 게 농사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농사짓는 이들에게 만만치 않은 게 유통이다. 수요가 있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은 폭락한다. 그런 만큼 농사에서는 출하 시기를 제대로 맞추는 게 중요하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적당한 때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토마토 사이를 오가며 잘생긴 토마토부터 이제 막 빨갛게 색을 입기 시작하는 토마토, 그리고 아직 풋풋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토마토를 정신없이 따기 시작했다. 잘 익은 토마토는 줄을 건들기만 해도 후드득 떨어졌다. 아직 푸른빛이 도는 토마토라도 하루 이틀이면 후숙이 이루어진다는 설명은 나중에 들었다. 씨알이 굵은 잘 익은 토마토를 따는 내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힐링이 별건가? 이렇게 잘생긴 토마토 만나는 게 힐링이지.”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토마토를 따는 내내 즐거웠다. 붉은빛이 감도는 토마토를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작업은 이어졌다. 우리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토마토를 땄다. 마침내 선별 시간. 하루 종일 딴 토마토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다들 손놀림이 바빠졌다. 상자별로 어느 정도 적당한 크기를 맞추느라 손길이 부산했다. 10kg짜리 박스지만 우리는 조금 더 담았다. 아마 파는 이라면 정량을 맞추었을 테지만 우리야 그럴 필요가 없다. 



하루 일당으로 작업에 참가한 개인당 10kg짜리 10박스가 주어졌다. 살면서 이토록 많은 토마토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게다가 무려 열 박스라니. 나는 주변에 줄 만한 사람들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가 반절을 맡아서 해결해준다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10박스도 감사한 일인데 이 선생은 덤이라며 또 한참을 더 챙겨주었다. 10kg짜리 10 박스면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이를 먹는 사람까지 더해진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토마토를 싣고 집으로 장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들떠 있었다. 10박스 토마토를 싣고 오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뒷좌석을 가득 채운 박스는 보기만 해도 듬직했다. 토마토 무게를 모두 합한다고 해도 성인 두 명을 태운 것도 안 되는 무게지만 내가 느꼈던 만족감은 훨씬 더 컸다. 내가 직접 따고 선별작업까지 해서 그런지 마치 내가 농사를 지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작업을 하느라 몸은 피곤했으나 토마토를 받은 이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몇몇 이에게 토마토를 주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마음을 아는지 받는 이들도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나 역시 마치 산타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토마토는 누군가에게는 한 달간 풍족한 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늦가을, 한 명의 선한 마음이 주변에 베풀어준 따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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