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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26. 2023

출사의 기억


사실 나는 선유도 공원이 초행길이다. 선유도역에서 거리가 멀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35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지하철역에서 가깝지 않아 걸어가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게다가 양화대교가 공사 중이라 길을 건너고 다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도착해서도 카페 나루를 찾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출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우쓰라 카페에 행사 공지가 떴다. 빌트록스에서 주최하는 세 명의 모델과 함께 하는 75mm 렌즈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획 행사다. 사실 나는 모델을 대상으로 하는 출사다운 출사를 나가본 적이 없다. 그동안 우쓰라 카페에서도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나와는 인연이 멀었다.


그동안 내가 꺼려했던 이유는 모델이 가지고 있는 정형적인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이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어색한 모습을 담아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버겁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과감히 신청을 했다. 도착해서야 10대 1의 경쟁률이었다는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몰입도는 엄청나다. 그래서인지 셔터가 맹렬히 터지는 순간은 살아 있다는 환희나 때로는 살아야겠다는 절규처럼 들린다. 특히 모델과 함께 하는 출사라면 더 그럴 것이다.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 케이디 님과 미소님, 그리고 단미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은 소니, 후지, 니콘 팀으로 나눠서 출사를 진행하였다. 우리는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모델 입장에서 한꺼번에 그렇게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할 법도 한데 다들 경력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오늘의 관건은 빛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실내에서와 달리 빛이 만들어내는 순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왜 빛에 취했는지 알 법도 하다.



빛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또 다른 이면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만약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왔더라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세상의 빛들이 그 안에서 부르는 합창을 들었다. 그 수많은 노래들이 내게로 쏟아져 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가끔 어떤 것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그걸 찰나로 느끼고 어떤 이는 평생 간직한다. 짧은 시간, 세상의 빛이 자작나무 잎사귀로 출렁이던 그 시간에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


눈이 있는 자는 눈으로, 귀가 있는 자는 귀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우리는 그것을 즐겼다. 세상 사람들은 사진에 대해 정의를 할 때 빛을 이야기하거나 순간을 포착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안다.




오늘 선유도 공원에서 우리는 현장을 지배했고 빛을 함께 누렸으며 더불어 사진 찍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세 명의 모델에 두 번씩 촬영을 했으니 물리적으로 따진다면 모두 여섯 명의 모델을 촬영한 것과 같다. 찰나의 순간에 모델이 움직일 때마다 때로 자연인 듯 자연이 아닌 듯 우리는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다른 큰 울림이라도 있었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초보 출사자에게 그런 건 없었다. 다만 나는 잠시 사진 출사의 즐거움을 맛보았던 것도 같다.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내가 완전한 하나였다. 자연을 담고 싶었으나 자연이 되지 못한 우리는 그렇게라도 해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무작정 셔터만 누른다고 사진이 찍히는 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이해, 대상과의 교감, 빛을 끌어들이는 기법, 적절한 사진 기술 등 이 모두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장의 사진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대상이 있으면 먼저 카메라부터 들이대려고 한다. 사전에 대상을 이해하고 대상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고 하는 대신에 마음이 급한 이들은 먼저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마치 지금 찍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그 기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조바심을 낸다. 가끔 연사를 날리는 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저렇게 사진을 찍다가 그중에 한 장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운에만 맡기기에 우리는 너무 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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