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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20. 2024

농사 3년차 일기


명색이 3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여전히 아는 게 별로 없다. 재작년, 내 인생에서 처음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밭이었더라면 그래도 선택지가 많았겠지만 하필 논이라서 선택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고민 끝에 제일 만만한 옥수수가 당첨되었다. 일단 심기로 결정은 했지만 처음 하는 농사다 보니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마침 숲해설가 동기가 속리산 근처 보은에서 살고 있었다. 자문을 구하자 옥수수 씨앗을 구해주었다. 유명한 대학 찰옥수수였다. 일단 땅을 파고 옥수수 씨를 3~4개씩 심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가보았더니 옥수수 대신에 잡풀만이 무성했다. 올해 농사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나중에 130여 개의 옥수수가 나왔다. 약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라게 하는 건달농법으로 한해를 버텼다. 나중에 크지는 않았지만 잘 여문 옥수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작년에는 씨 대신 모종을 직접 사서 딸아이와 함께 심었다. 조금 욕심을 내서 참외와 수박 등도 함께 심었다. 씨앗보다는 발아한 모종을 심었기 때문에 제법 기대가 컸다. 중간에 제초제 대신에 3배 식초를 사서 뿌리기도 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엄청 더운 날이 계속되면서 논에 갈 상황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가보니 옥수수 대신에 풀만이 무성했다. 결국 작년에는 옥수수 열매는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농사를 완전 망쳤다.      



올해는 옥수수를 심기 전에 가서 작년에 자랐던 풀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무성했던 풀은 겨울을 지나면서 다 말라버렸지만 양이 많다 보니 정리하는 자체가 큰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가보니 새로운 풀이 무성하게 나 있었다. 이번에는 의욕적으로 15리터짜리 3배 식초를 주문해서 논에 뿌렸다. 뿌리는 중간에도 이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그리고 오늘 가보니 일부 풀이 죽기는 했지만 여전히 잡초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심은 고추와 토마토, 그리고 깻잎은 자라는 게 영 시원치 않은데 잡초는 달랐다. 차라리 잡초를 키운다면 더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일단 풀을 제거해야 모종을 심을 수 있기에 오후 내내 낫으로 250평에 달하는 잡초를 베었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다 보니 끝이 보였다. 잡초를 다 베고 나니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팔이 뻑뻑하고 제대로 타자를 치기 힘들기는 하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고 고생했는 데 내일은 또 얼마나 욱신거릴지 살짝 걱정이 앞선다. 


작년에는 풀이 나기 전에 모종을 심었는데 올해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 모종을 심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는 하다. 이제 모종을 사서 심는 일만 남았다. 중간에 풀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주어야 그나마 옥수수가 자랄 것이다. 일단 잡초를 넘어서기만 하면 옥수수는 자랄 수 있다. 올여름이면 잘 자란 옥수수를 만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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