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옥수수를 심었다.
어제 모종을 사두고 오늘 새벽에 가서 심기로 했다. 하지만 어제 피곤해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니 이미 해가 떠 있다. 그래도 오늘을 놓치면 또 다른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올해가 농사 3년째인데도 1년에 한 번씩 심다 보니 어떻게 심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풀 덮인 250여 평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답답하다.
일단 모종을 옮기고 나니 어떻게 심어야 할지 더 막막하다. 농사도 요령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쩌다 하다 보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첫해에는 괭이로 1,000개의 구멍을 파고 거기에 일일이 씨를 심었다. 그걸 혼자 다 했을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심고 나서 과연 싹이 날까 하는 생각에 마음 졸이기도 했다. 다행히 일부가 싹이 나서 수확까지 거뒀으나 작년에는 옥수수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올해도 두 번에 걸쳐(총 3번) 이미 풀을 잘랐음에도 아내가 보기에는 답답한지 한 마디 한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아내는 농부의 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잔소리가 더 심하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 하면서도 워낙 농사를 모르니 할 말이 없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를 괜히 데려왔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역시 내 우려가 맞았다. 작년에 딸아이와 함께 심었을 때는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심한 말은 듣지 않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300개 모종을 어디에 심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여전히 막막했다. 어차피 땅이 여유가 있으니 군데군데 비는 곳에 심기로 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언젠가는 끝이 있다.
작년과 달리진 것은 모종을 심는 기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곡괭이로 땅을 팔 경우, 나중에는 허리를 못 쓸 정도로 힘이 든다. 게다가 모종을 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생하는 데 비해 이번에 사용한 기구는 한결 편하다. 모종을 심을 만큼 구멍만 만들어지니 그 안에 모종만 넣고 흙을 덮어주면 끝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서 일을 하기 한결 쉬웠다.
농사를 시작한 첫해에는 땅이 굳어서 파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모종 300개면 제법 많이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심고 나서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옥수수의 가장 큰 적은 풀이다. 옥수수가 풀보다 더 자라면 상관이 없으나 그렇지 않다면 옥수수가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옥수수 농사만이 아니라 농사를 하려고 한다면 풀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처럼 날이 덥고 해가 쨍쨍한 날에는 옥수수를 심자마자 바로 시들어버린다.
나는 심는 걸로 만족하지만 아내 입장은 다르다. 아내는 내가 해놓은 걸 보더니 “이 중에서 얼마나 살지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쉰다. 아마도 힘들어서겠지만 그런 말을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나는 땅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어진다.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1년에 옥수수 10개도 안 먹는 내가 옥수수 농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보기에 한심하겠는가?
모종을 사고 비료며 이것저것 구입한 것만 해도 상당한 경비가 들었다. 거기다 이미 몇 차례 와서 풀을 베고 제거하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으니 이왕이면 옥수수가 잘 자랐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있을 터였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하지만 일단 심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한시름 덜었다.
오늘 심고 난 후 비가 와서 다행이다. 다녀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며칠 후 갔을 때 옥수수들이 무럭무럭 자라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 심은 모종 300개 중 얼마나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많이 살아남아서 아는 지인들에게 선물로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다음에 수확할 때 브런치 친구들에게 댓글로 신청을 받을지?